오늘 미사의 말씀은 얼핏 듣기에 우리가 하느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제시하는 듯하지만, 곰곰이 머물러 보면 사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고 계신지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마르 12,28)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정말 몰라서 배우고 싶은 걸까요? 아니면 답을 훤히 알지만 예수님을 시험해 보려는 걸까요?
이도 저도 아니라면, 모든 계명을 아우르는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계명을 콕 집어 달라는 걸 보니 그동안 세부적인 조항들을 열심히 따지며 지키다가 제 풀에 지친 걸까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르 12,30).
이 말씀에 가만히 머무릅니다. 이 계명이 단순히 내 편에서 해야 할 절대 의무라면 부담스럽고, 늘 부족해 송구스럽고, 또 무겁게 느껴져야 할텐데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음이 뭉클해지고 눈시울도 뜨거워집니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계명이 나에게 부과된 의무이기 이전에 먼저 하느님께서 나에게 하고 계신 것이기에 그런 것 같습니다. 사실 이 계명은 나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법입니다.
주님은 나에게 다 주십니다(예수님께서 1인칭 단수인 "너"라고 하셔서 그대로 받았습니다). 당신 마음, 목숨, 정신, 힘을 다 내어 주십니다. 그렇게 나를 사랑하고 또 사랑하십니다.
"이스라엘아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라"(호세 14,2).
제1독서에서는 호세아 예언자를 통해 이스라엘의 회개를 촉구하시는 하느님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이제 저희는 황소가 아니라 저희 입술을 바치렵니다"(호세 14,3).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화려하고 엄청난 제물이 아니라 우리 마음입니다. 소박하고 진솔한 사랑 고백이고 가난한 영의 기도입니다.
"나의 분노가 풀렸으니 이제 내가 반역만 하는 그들의 마음을 고쳐 주고 기꺼이 그들을 사랑해 주리라"(호세 14,5).
주님은 마치 실컷 죄 지으며 제멋대로 살던 우리가 이제 그만 당신께 돌아서려고 마음만 살짝 먹어도 당장 모든 걸 용서하려고 기다리시는 분 같습니다. 그분은 사랑하는 우리를 기다리며 언제라도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는 분이십니다.
"이슬, 나리꽃, 싹, 아름다운 올리브 나무, 레바논의 향기, 내 그늘, 포도나무, 포도주, 열매..."
이어지는 주님의 축복들이 얼마나 생기 넘치고 찬란한지요. 이 모든 것이 죄로 기울어 등돌리고 있는 동안에는 볼 수 없었던 하느님의 아름다움입니다.
우리가 회개함으로써 이 모두를 얻는다기보다, 이 모두를 주시려는 하느님께로 방향을 돌리는 것이 회개가 아닐까 합니다. 바로 "내 것이 다 네 것"(루카 15,31)이었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내 백성에게 나는 기름진 참밀을 먹이고 바위틈의 석청으로 배부르게 하리라"(화답송).
마음을 다해 당신께 다가서는 우리에게 주님께서 주시는 기름진 참밀은 빵의 형상으로 오시는 당신이십니다. 바위틈의 석청은 꿀보다 단 그분 말씀이시지요. 성체와 말씀! 주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가장 귀한 것을, 아니 당신을 통째로 주십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사랑은 하느님과 우리의 상호적 사랑입니다. 더할 수 없을 만큼 극진히 서로에게 쏟아붓는 사랑은 그래서 하나입니다.
사랑으로 하나 된 존재들에서 네 사랑과 내 사랑을 칼로 베듯 구분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랑에서 넘쳐 흘러나오는 이웃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 모상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계명 가운데 첫째라고 하십니다.
지식 안에 맴도는 것은 아직 사랑이 아닙니다. 화려한 언변으로 불러대어도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마음과 목숨과 정신과 힘을 다하는 사랑은 주님만이 아십니다.
사랑하는 벗님! 온 존재를 바쳐 주님을 사랑하는 벗님을 축복합니다. 그 사랑이 이웃으로 흘러 세상에 온기와 향기를 더하고 있으니 감사합니다. 어려운 시기를 함께 동행하며 진정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벗님이 있어 행복합니다. 고맙습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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