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미사의 독서들 안에는 "자비"라는 말씀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반복됩니다
"저희에게서 당신의 자비를 거두지 마소서"(다니 3,35).
바빌론에 유배 간 유다 청년들이 신상에 절하기를 거부하다 불가마에 던져집니다. 그중 한 명인 아자르야가 불길 한가운데서 주님께 이처럼 기도를 드리지요.
이스라엘에게는 지금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고 민족은 유배로 뿔뿔이 흩어졌지요. 게다가 자신들은 죽을 곤경에 빠진 상태입니다.
이토록 처참한 상황에서 보통 사람이라면 신을 원망했을지도 모르지요. 바로 지금 여기서 우리는 아자르야의 고백을 통해 신앙의 정수를 만납니다.
"저희의 죄 때문에"(다니 3,37)
아자르야는 이 모든 불행의 원인을 자신들에게 돌립니다. 하느님 탓, 조상 탓, 남 탓 하지 않고 자신을 봅니다.
원래 하느님 앞의 이스라엘의 정체성은 "당신의 벗, 당신의 종, 당신의 거룩한 사람"(다니 3,35)이었지요. 이제 그 모든 걸 잃은 듯 보이는 생의 밑바닥에서 자신들의 우상숭배와 배반과 타협을 뉘우칩니다.
"당신 호의에 따라, 당신의 크신 자비에 따라 ... 저희를 구하시어"(다니 3,42)
우리가 기대하고 희망하고 간청해야 하는 것은 오로지 주님의 호의와 자비입니다. 구원에 있어서 우리가 주장할 권리는 사실상 없습니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용서를 화두로 하느님 자비를 가르치십니다.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마태 18,21)
베드로의 이 질문에서 "용서"는 마치 선심 쓰는 행위처럼 느껴지는데,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는 예수님의 대답에서 "용서"는 의무에 가깝습니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올까요?
"그 종의 주인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마태 18,27)
예수님은 엄청난 빚을 탕감받은 종의 이야기를 비유로 드십니다. 주인의 "가엾은 마음"에서 시작된 용서는 한 사람을 살릴 뿐만 아니라 그 가족과 재산까지 지켜 줍니다.
그런데 그 자비가 그 종에게 이르러 멈추어 버리지요. 그는 제가 입은 자비를 잊고 제 동료를 다그쳐 감옥에 가두어 버렸으니 말입니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마태 18,33)
주님은 자비의 연속성을 말씀하십니다. 한번 베풀어진 자비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자비의 길은 이어져야 합니다. 자비의 흐름이 끊기지 않고, 자비의 걸음이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태초에 시작된 하느님의 자비가 온 세상을 돌고 돌아 우리에게까지 다다랐는데 우리게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서는 안 됩니다. 자비를 삼켜버리고 아무 꽃도 열매도 내지 못하는 돌덩이 심장이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마음으로부터 용서"(마태 18,35)
베드로의 질문 안의 "용서"와 예수님 답변 안의 "용서"가 같은 단어, 다른 온도를 담고 있음은 이 차이가 아닐까 합니다. 용서는 가식이나 요식행위가 될 수 없는 심장의 일이어야 합니다.
마음으로부터 용서하라고 하시는 이 말씀 안에는 이미 그분이 우리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셨다는 전제가 담겨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가엾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당신의 자비를 우리 죄에 대한 조건 없는 용서로 표현하십니다.
"주님, 당신의 자비 기억하소서"(화답송).
부족하고 나약한 죄인인 우리는 죄에 떨어질 때마다 주님 옷자락에 매달려 당신의 자비를 기억해 달라고 읍소합니다.
그런데 사실, 진정으로 그분의 자비를 기억해야 할 존재는 바로 우리들이 아닐까요? 주님은 결코 당신 자비를 잊지 않으시지만 우리가 받은 자비를 종종 망각해 버리고는 그 자비가 필요한 형제와 이웃에게 영 딴소리를 하기 일쑤니까요.
사랑하는 벗님! 우리는 받은 자비를 기억해야 합니다.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용서는 이제 우리에게 선심이 아니라 의무니까요.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마태 18,35).
비유를 맺는 예수님의 이 말씀은 괜한 추임새가 아니라, 자비의 길을 이어가라고 한번 더 강력히 촉구하시는 다짐입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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