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정의 보호자이신 요셉 성인을 기리는 오늘, 미사의 독서들 안에는 하느님 사람 셋이 등장합니다.
제1독서에 등장하는 다윗과 제2독서의 아브라함은 구약 역사 안에서 하느님께 각별히 사랑받은 이들로 꼽힙니다. 성경은 이 두 사람에 대해서 그들이 받은 축복은 물론 그들의 실수와 약점에 대해서도 주저없이 펼쳐놓지요.
그런데 신약의 문턱에 선 요셉에 대해서 성경은 "의로운 사람"(마태 1,19)이라는 수식 외에 어떤 표현도 절제합니다. 어디에서도 요셉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마리아와 예수님의 배경으로서밖에는 별다른 일화가 등장하지 않으니까요.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마태 1,20).
요셉이 무얼 두려워했을까요? 아니, 천사가 간파한 요셉의 두려움은 무엇일까요? 보통의 두려움이 자기가 해를 입을까 염려하는 데서 오는 감정이라면 지금 요셉의 상태에는 맞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마 보통 사람이라면 배신당했다는 분노로 떨고 있을 법도 하니까요.
요셉은 마리아의 임신으로 인해 자기가 당할 모욕이나 난처함을 두려워한 것이 아닐 겁니다.
관습에 따라 마리아에 대해 권리를 가진 약혼자로서 그녀를 억지로라도 소유할 수 있지만, 그것이 마리아의 행복에 최선이 아닐 수도 있다는 염려에서 나온 두려움일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마태 1,19)하지요. 혹시 마리아에게 사랑하는 이가 따로 있다면 자기가 조용히 물러서 주려는 것입니다. 오로지 마리아의 행복을 위한 포기의 결단이지요.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마태 1,24).
하지만 요셉은 천사의 말을 듣고 마음을 바꿉니다. 뭔지 정확히 잘 몰라도 정결한 마리아를 통해 하느님께서 무엇인가를 하시리라고 믿게 되지요. 두려움이라 표현된 그의 내적 갈등이 꿈속 천사를 통해 개입하신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 일순간 정리된 것입니다.
요셉의 의로움은 생각이나 이념에 있지 않고 실행에 있습니다. 그는 믿고 행동함으로써 그 자신이 진정한 의로움이 되었습니다.
제1독서에서 주님은 다윗에게 영원한 왕좌를 약속하십니다.
"네 몸에서 나와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 그 나라의 왕좌를 영원히 튼튼하게 할 것이다"(2사무 7,12-13).
하느님께서는 성자 예수님을 다윗의 후손인 요셉에게 맡겨 이 약속을 이루십니다. 제1독서와 화답송에 무수히 반복되는 "영원"이라는 단어는 하느님의 이 약속이 단지 이스라엘 왕좌의 혈통적 연속성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믿음으로 얻은 의로움"(로마 4,13)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율법에 따라 사는 이들만이 아니라 믿음에 따라 사는 이들에게도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는 약속이 보장된다고 역설합니다.
복음사가가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양부에게 부여한 "의로운 사람"이라는 표현은 요셉이 육의 질서뿐만 아니라 영의 질서 안에서도 다윗 왕좌와 예수님을 잇는 계승자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마리아와 요셉, 두 충실하고 소박한 의인들의 협력으로 실현의 물꼬가 트입니다.
인간적 합리적 계산으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건 앞에서 이해하기를 중지하고 믿기를 선택한 이들의 결단이 있었기에 구원의 역사가 이어진 것이지요.
사랑하는 벗님! 오늘날 과학과 지성이 지배하는 듯한 이 세상에도 믿음으로 복되고 믿음으로 의로운 수많은 마리아와 요셉들이 세상의 격류에 역행해 진리와 사랑의 말씀에 머무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족하고 어리석지만 하느님의 신비 안에서 믿고 의탁하며 살아가는 벗님이 바로 그 마리아고 요셉입니다. 믿어서 복되고 믿어서 의로운 우리는 바로 그 믿음으로 구원받을 것입니다. 아멘. 피앗.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강 론 말 씀 '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20년 3월 21일 사순 제3주간 토요일 (0) | 2020.03.21 |
|---|---|
| 2020년 3월 20일 사순 제3주간 금요일 (0) | 2020.03.20 |
| 2020년 3월 18일 사순 제3주간 수요일 (0) | 2020.03.18 |
| 2020년 3월 17일 사순 제3주간 화요일 (0) | 2020.03.17 |
| 2020년 3월 16일 사순 제3주간 월요일 (0) | 2020.03.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