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3월 21일 사순 제3주간 토요일

dariaofs 2020. 3. 21. 07:13



오늘 미사의 말씀에서 저는 한 가여운 사람을 만납니다. 바로 바리사이입니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한 사람은 세리였다"(루카 18,10).

유다 사회에서 극과 극을 이루는 두 인물이 성전 안에 함께 있습니다. 경건하고 열심한 모범적 사회구성원 바리사이와, 동족을 착취해 이민족의 배를 불려주고 자기도 한몫 단단히 챙기면서 손가락질 받는 세리입니다.


 바리사이와 세리 사이에는 무수한 층위의 보통 사람들이 존재할 겁니다. 이 둘은 그들 모두를 아우르는 표본 집단일 뿐이지요.

믿는 사람은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기도는 낯설지 않습니다. 누구에게 비느냐에 따라 종교명이 달리 붙을 뿐이지요. 종교성은 인간이 지닌 보편적 특징 중 하나입니다. 그러니 기도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루카 18,14).

하느님 앞에서 하나 부끄러울 것 없는 바리사이와 고개도 못 들 정도로 자신이 없는 세리가 크게 대비됩니다. 세속적 시각에서는 바리사이가 합격, 세리는 불합격일 터인데 예수님은 반대로 말씀하시네요.

이 둘을 바라보시는 하느님의 눈을 관상합니다. 그토록 당당한 바리사이를 향해 하느님은 애처로움과 안타까움이 가득한 눈길을 보내십니다. 왜 그러실까요? 하느님은 바리사이와 그의 기도를 외면하거나 내치신 게 아닙니다.


그가 전혀 다른 곳을 향해 혼잣말을 한 것일 뿐, 그는 기도하지 않았던 겁니다. 바리사이는 자기 자랑과 무용담과 공치사를 들어 줄 허공에, 자기가 만든 신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대화가 아니라 자기 만족적 혼잣말일 뿐이었지요. 그가 서 있던 곳이 아무리 성전이었어도 그는 하느님 앞에 있지 않았습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루카 18,14).

하느님,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낮추실 수 있는 최대치까지 스스로를 끌어내리신 분입니다.


창조가, 강생이, 십자가 제사가 말해 주는 역설이지요. 결국 무뢰한들과 같은 취급을 받으시고 가장 치욕적인 죽음을 당하신 그분은 가장 낮아지신 까닭에 가장 높아지셨습니다.

불행히도 바리사이는 이를 모릅니다. 스스로 완벽한 신앙인이라 자부하는 그는 너무 높이 있어서 낮은 곳에 계신 하느님께 도무지 가까이 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그가 얼마나 불쌍합니까!

"그러니 주님을 알자. 주님을 알도록 힘쓰자"(호세 6,3).

제1독서에서 호세아 예언자는 하느님을 제대로 알자고 이스라엘을 독려합니다. 하느님께 대한 이스라엘의 배반과 고집은 많은 경우 그분을 제대로 모르는 무지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다"(호세 6,6).

우리도 일껏 상대방에게 잘 해줬는데 반응이 맘에 들지 않을 때가 있지요? 하느라고 했지만 상대방이 진정으로 바라는 게 뭔지 모르면서 내 식대로 했기 때문에 좋은 소리를 못 들은 경험 말입니다.

하느님도 마찬가지신 것 같습니다. 정작 그분은 당신 백성의 "마음"을 바라시는데 백성은 율법이 정하는 황소나 양, 곡식으로 적당히 때우고는 마음은 온통 저만 잘 사는 데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순간이 닥쳐도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들에게 하느님은 애틋한 아버지, 사랑하는 신랑이 아니라 저 멀리 계시는 심판자일 뿐이었으니까요.

그래서 하느님은 나를 좀 알아달라고 호소하십니다. 다른 것 필요 없고 그저 "하느님을 아는 예지"를 바라십니다.

사실 오늘의 주인공 바리사이는 세상 눈으로 죄인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리보다 열심히 지킬 것 지키고 사는 사람이니까요. 단 하나 그에게 문제가 있다면 하느님을 몰랐다는 점입니다.


세리는 알고 있는 하느님, 판단하지 않고 단죄하지 않는 자비의 하느님, 용서의 하느님을 바리사이는 몰랐습니다. 그리고 이 차이는 영의 세계에서 상당히 다른 결과를 가져옵니다.

예수님은 결코 세리처럼 살라고 말씀하시는 게 아닙니다. 어떤 삶을 살더라도 "고쳐 주시고 싸매 주시고 살려 주시고 일으키시는"(호세 6,1-2 참조) 하느님을 알고 믿으라고 하시는 겁니다.

우리 중 누구도 하느님 앞에 완전한 존재는 없습니다. 알고도 짓고 모르고도 짓는 허물들을 문득문득 깨달을 때마다 지치지 않고 주님께 돌아가려면, 너른 그분 품에 달아들려면 먼저 그분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벗님! 미사 참여가 어려워 실감이 덜 날 수도 있지만 사순절이 중반을 훌쩍 넘었습니다.


그분을 아는 지식에서 나는 바리사이와 세리 사이에 어디쯤 서 있는지요? 나는 과연 주님의 용서와 자비를 진짜로, 진짜로, 진짜로 믿는지 곰곰이 숙고하는 하루 되시길 기원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