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미사의 말씀 안에서도 우리는 '새 창조의 기적'을 만납니다.
"보라, 내가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라"(이사65,17).
기쁨에 찬 주님의 음성이 제1독서의 첫머리에서 울려퍼집니다. 즐거움이 가득하면서도, 반드시 그리 되리라는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단호함과 확고함이 느껴집니다.
혹독한 유배가 끝난 뒤 새롭게 예루살렘을 재건하고 민족적 정체성을 복원해야 하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큰 희망이 되는 말씀이지요.
"기쁨, 즐거움, 집, 포도밭, 열매"
이어지는 독서의 대목에서 그 희망을 구체화한 말씀들이 반복되어 나옵니다. 당신 백성에게 새 터전을 허락하시고 자리잡도록 보살피시는 주님께서 오히려 백성보다 더 설레고 행복해 하신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에서 한 사람의 믿음이 어떻게 새 창조와 이어지는지를 봅니다.
"예수님을 찾아와, 자기 아들이 죽게 되었으니 카파르나움으로 내려가시어 아들을 고쳐 주십사고 청하였다"(요한 4,47).
죽어가는 아이의 아버지인 왕실 관리가 예수님께 동행을 청합니다. 그는 여느 의사나 주술사처럼 예수님께서도 직접 환자를 보셔야 고쳐 주실 수 있으리라 여기는 것 같습니다.
소문으로만 듣던 예수님께 신분과 체면을 뒤로 하고 아들의 치유를 간청하는 그에게 아직 믿음이랄 것은 없지만, 절박함에서 우러난 진정성은 가득합니다.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요한 4,48).
예수님의 답변이 좀 생경하게 느껴집니다. 앓는 이를 향하는 그분의 연민을 볼 때 당장 아이 아버지에게 위로와 희망의 말씀을 건네실 것 같은데 다짜고짜 "믿음"이라는 주제를 던지십니다.
이 말씀에는, 너에게 믿음이 먼저인지 기적이 먼저인지 선후 관계를 결단하라는 촉구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도"(요한 4,49)
하지만 왕실 관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예수님께 같이 가달라고 청합니다. 이 "그래도"에는 병자와 약자를 소중히 하시는 예수님 인격에 대한 신뢰가 담겨 있습니다.
아직 완전히 꼴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그의 믿음이 잠재적 상태에는 이른 것 같습니다.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요한 4,50).
예수님은 재차 간청하는 그의 태도를 귀찮아하지도, 무례히 여기지도 않으시고, 선선히 그가 바라는 것 이상의 답을 주십니다.
아이의 치유를 '같이 내려가'는 과정 없이 당장 이루어 주신 것이지요. 같이 내려가 달라는 그의 청원이 인간적 차원이었다면 "살아날 것"이라는 예수님 확언은 신비적 차원입니다.
"말씀을 믿고 떠나갔다"(요한 4,50).
예수님 인격에 대한 신뢰는 그분이 하신 말씀에 대한 믿음으로 발돋움합니다. 그는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물리적 현존 없이도 말씀만으로, 살리고자 하는 의지 만으로 기적을 이루어 주실 예수님을 굳게 믿습니다.
"그와 그의 온 집안이 믿게 되었다"(요한 4,53).
아이 때문에 예수님을 찾으면서 시작된 믿음의 첫걸음이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자라나 결국 진정한 믿음으로 거듭났습니다. 왕실 관리는 아이의 생명과 함께 믿음까지 얻었으니 주님은 절박했던 그의 고통을 몇 배의 상급으로 갚아주신 것입니다.
여러 기적 사화에서 드러나듯 예수님은 곧잘 치유와 구원의 원동력을 당사자의 믿음으로 규정하시지요. 믿음을 지닌 이에게는 일어나는 모든 일이 기적이고 구원인 반면, 믿지 않는 이에게는 아무리 큰 기적도 제 구원과 하등 관계없는 우연일 뿐입니다.
오늘 복음 대목에서 일어난 치유 사건도 물론 놀라운 기적이지만, 아이 아버지와 온 집안이 얻은 "믿음"야말로 새 창조의 절정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도"
오늘 저는 이 짧은 말씀에서 하느님을 만납니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자존심도 내려놓고, 포기하기를 포기한 아버지의 간절함이 그 안에 다 담겨 있으니까요.
우리 하느님 아버지는 부족한 우리를 품으시느라 얼마나 무수히 "그래도"를 되뇌이시며 재차, 삼차, 수차례 호소하고 달래고 침묵하고 또 눈감아 주시는지요.
사랑하는 벗님! 죄인인 우리에게 일어날 새 창조는 아버지의 무한한 "그래도"가 낳은 열매일 것입니다. 이 "그래도"가 우리 믿음에 물을 주고 구원을 견인해 오늘에 이르렀지요.
한달 여 계속되고 그 끝이 언제일지 가늠하기 힘든 이 혼란의 시기, 우리의 "그래도"의 믿음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진정한 새 창조는 이렇듯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니, 말씀과 함께 깊이 깊이 내면으로 들어가는 오늘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저는 오로지 주님만 믿나이다. 가련한 저를 굽어보시니 당신 자애로 저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리이다"(입당송).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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