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삶은 빛에 의해 유리와 같이 사라짐입니다”
지난 호에서 성모님은 ‘주님의 종’으로서 토마스 머튼에게 관상의 모델이 되셨다는 설명을 하였다.
이번 호에서는 ‘성모님의 순종과 말씀의 오심’, ‘주님과의 일치: 창문의 비유’를 통해 관상의 모델이 되신 머튼의 성모 영성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다룬 다음, 우리가 머튼의 마리아 영성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점을 소개하고자 한다.
성모님의 순종과 말씀의 오심
성모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전해진 하느님의 말씀에 “왜”라고 하지 않고 “예”라고 응답하셨다. 이 성모님의 “예”라는 순종의 응답을 통해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오셨다. 성모님은 ‘말씀’이신 아드님과 태중에서부터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긴 기다림 속에서 함께 하셨다.
관상은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예”라고 응답하는 것이다.
관상은 성모님께서 아드님의 탄생을 위해 기다리셨고, 아드님의 공생활 시작을 기다리셨고, 아드님의 부활을 기다리셨듯이, ‘말씀’이신 그분께서 우리 안에 재탄생하시기 위한 기다림을 필요로 한다.
성경 말씀을 읽고 맛 들이며, 고요한 미풍 가운데 들려오는 침묵의 말씀을 들으며 기다릴 때, 어느 순간 우리가 그분의 말씀과 하나 되어 있는 체험을 하게 된다.
성모님께서 그 누구보다도 철저히 아드님과 일치의 삶을 사셨기에 머튼은 성모님을 ‘유리창’에 비유하며 그분의 자기 비움과 깨끗함을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머튼은 「새 명상의 씨」에서 “이기심이 전혀 없고 아무런 죄도 없는 성모님은 햇빛을 들여보내는 기능 이외에 다른 기능은 전혀 하지 않는 맑은 유리창과 같이 깨끗하십니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성모님은 너무도 맑고 투명한 창문이시기에 성모님을 바라보지만 성모님은 사라지고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머튼은 성모님을 창문에 비유하며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노래했다.
저의 뜻은 창문과 같기에,
그리고 태초의 탄생이 교만이 아님을 알기에,
저의 삶은 빛에 의해 유리와도 같이 사라짐입니다.
저는 신랑의 태양의 강렬한 빛 안에서 온전히 사라졌습니다.
저의 사랑은 창문과 같기에,
그리고 태초의 먼지와 같은 탄생이 수치가 아님을 알기에,
저는 저의 죽음의 새벽까지 온 밤을 기다렸습니다.
제가 저의 성령과 혼인하던 날,
그리고 거룩한 변모에 의해 빛 안으로 온전히 사라졌습니다.
주님과의 일치: 창문의 비유
머튼은 1962년 강론에서도 “순수함과 겸손의 완전함에 의해 성모 마리아보다 하느님의 빛을 더 완벽하게 소유한 이는 없었다.
그녀는 빛이 비춰지면 온전히 사라지는 듯 보이는 깨끗한 유리창처럼 진리와 충만히 하나 되었다”라고 성모님과 하느님의 일치를 유리창에 비유하여 묘사하고 있다.
머튼은 성모님의 가장 큰 영광은 그녀가 스스로를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성모님께서 완전하게 자신을 비우셨기에 오히려 더 큰 하늘의 영광을 받으신 것이다.
“비움 속에 감춰져 있는 것은 성모님이 하느님으로 충만해 있듯 하느님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며 하느님을 사람들에게 모셔오는 성모님의 사명에 동참하는 것이다…. 성모님의 영광은 그저 단순히 하느님의 영광이 그분에게 있는 것뿐입니다.
성모님도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께로부터 받지 않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할 수 있다.”(「새 명상의 씨」)
머튼의 이러한 성모님에 대한 묘사는 우리 인간이 하느님과 완전한 일치를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우리 역시 성모님처럼 자신을 완전하게 가난하게 하고, 자신을 완전하게 비우며,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어느 날 하느님의 영광을 받을 것이다.
머튼은 “성모님께서 숨어 계시는 하느님 안에 우리도 숨어든다면 우리는 성모님을 찾아 만날 수 있습니다. 성모님의 겸손과 드러나지 않으심, 그리고 청빈과 드러냄 없는 은거를 함께 나누는 것은 성모님을 아는 가장 좋은 길입니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겸손과 비움을 통해 성모님을 알아갈 때 우리도 성모님의 하느님과의 신비로운 관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하느님과의 신비로운 관계는 성모님 안에 예수님께서 사시듯이 내 안에 예수님이 사실 때 완성된다.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
성모 마리아여, 하느님께서는 당신에게 우리를 하나 되게 하는 사명을 주셨으며,
그리하여 한 여인을 통해 우리가 지혜로운 사람들로 변화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신을 통하여 저는 오직 하느님과 지내는 고독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하늘나라의 창문으로 창조되셨습니다.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
…
작은 방에서 오로지 당신과 하느님하고만 지내고 있을 제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우리를 당신의 마음속에 품어 주소서.
그분의 뜻이 바로 제가 머무는 곳입니다. 그분의 사랑이 저의 고독입니다.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토마스 머튼, 「침묵 속의 만남」)
▲ 박재찬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부산 분도 명상의 집 책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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