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지침을 짚어 주십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르 12,30-31).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하느님 모상으로 창조된 우리의 지상 과제입니다. 자기 존재의 근원이고 목적이며 주인이신 분께 받은 가장 귀한 것이 사랑이니, 되돌려드릴 수 있는 가장 귀한 것 역시 사랑입니다. 거대한 성전 건물이나 값진 제물도 사랑에서 우러난 봉헌이 아니면 요식행위에 불과합니다. 하느님은 이미 예언자를 통해 "역겹다"(이사 1,13 참조)고까지 하셨지요.
"훌륭하십니다, 스승님"(마르12,32).
율법 학자는 예수님 말씀에 탄복합니다. 혹 그가 예수님을 떠보려는 속셈으로 질문했거나, 저 자신이 하느님 사랑이나 이웃 사랑을 등한시하는 자였다면 예수님 말씀에 그처럼 사심없이 동의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 스스로가 깨달은 율법의 본질을 정통으로 건드리시는 분 앞에서 그의 지성과 영혼이 무척 흡족해 보입니다.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마르 12,34).
예수님은 당신 말씀에 경탄하는 율법 학자에게 이처럼 큰 격려를 보내십니다. 이날은 아마도 그 율법 학자에게 잊혀지지 않을 행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가장 큰 계명임을 아는 것만으로도 하느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면, 그 계명을 실천하고 사는 사람의 자리는 어디쯤인지 더 말할 것도 없겠지요.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그 어떤 것도 율법, 곧 하느님 말씀의 본질인 사랑을 가로막을 수 없다고 힘 주어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은 감옥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2티모 2,9).
바오로는 죄수처럼 감옥에 갇혀 있지만 신실한 협력자들을 통해, 또 서간을 통해 곳곳의 신자들을 지도하며 주님의 길을 안내합니다. 죽으셨지만 되살아나신 예수님처럼 그에게도 물리적 제약이 한계가 되지 못합니다.
"나는 선택된 이들을 위하여 이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2티모 2,10).
예수님 뒤를 이어 바오로도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갑니다. 그는 잠시의 고통을 견디어내면 영원한 영광과 함께 구원을 얻으라는 것을 실제로 보여 줍니다. 그 무엇도 주님을 향한 그의 사랑을 중단시킬 수 없습니다.
하느님을 더 열렬히 더 진실되게 더 뜨겁게 더 충실하게 사랑하고 싶지만 번번이 현실적 올무에 발길이 채이는지요? 사람을 더 사심없이 더 따뜻하게 더 관대하게 더 큰 연민으로 사랑하고는 싶은데 당장 제 앞가림이 더 급하다고 느끼시는지요? 마음이 없지는 않은데 사랑하려는 의지 앞에 왜 이리 걸리는 게 많은 걸까요?
"그대들에게 애원하니 우리 사랑을 방해하지도 깨우지도 말아 주오. 그 사랑이 원할 때까지"(아가 2,7).
그래서 아가의 저자는 사랑을 방해하지 말아달라고 애원합니다. 세상을 향해, 율법주의와 선민의식을 향해, 자신 안의 어둠과 상처를 향해, 제 안에 또아리를 튼 이기적 탐욕과 열등감을 향해 애원하는 겁니다. 사랑은 방해받아서 안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오늘도 마음과 목숨과 정신과 힘, 온 존재를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나인듯 귀하게 보아주고 보듬는 하루 되시길 축원합니다. 그렇게 애쓰는 가운데 우리는 하느님의 나라에 이미 가까이 있습니다.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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