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 각자에게 부활이 어떤 의미인지 묻습니다.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이 예수님께 와서 물었다"(마르 12,18).
예수님 시대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죽음 이후의 삶은 인간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입니다. 경험을 쌓아 공유할 수 없을 뿐더러 증명할 수 없는 영역이라 그렇지요. 게다가 죽음은 인간의 약함과 고통이 절정에 이르러야 관통하는 문으로 보이니, 무지에 두려움까지 더해져서 그런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날 때에는"(마르 12,25).
예수님께서 부활을 이야기하십니다. "다시 살아남"! 하지만 부활 이후의 삶은 지상 삶의 형태와 다르다고 하십니다. 지상 삶의 구조에 집착해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차원입니다.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마르 12,25).
혼인 제도를 빌어 부활 이후에 대해 여쭈니 예수님도 그에 상응하는 예를 드시지요. 자손 번식이 혼인의 목적 중 하나라면 천상의 삶에는 그 목적성이 불필요합니다. 또 자기 증여와 상호적 사랑이라는 목적성 역시 이미 보편적으로 이루어진 상태이니 굳이 두 사람을 엮어 발휘할 이유도 없을 터입니다.
"산 이들의 하느님"(마르 12,27).
중요한 건 우리의 아버지 하느님이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라는 점입니다. 창조와 소멸의 주권자시고 생명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그분은 우리 죽음 이전과 이후에도 변함없는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육의 눈으로 볼 때 펄펄 살아 움직이건, 육의 생명이 소진되어 저 세상으로 건너갔건, 우리는 하느님 앞에 살아 있습니다. 무한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의 눈에 우리 생명의 연속성이 육신의 죽음 따위로 단절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느님께 숨을 받아 생명을 누리기 시작한 순간부터 다시 생명의 나라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릴 때까지 우리는 그분 앞에 살아 있는 존재이고, 그분은 살아 있는 우리의 살아계신 하느님이십니다.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히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2티모 1,9).
하느님께서 우리가 구원되고 거룩히 살기를 원하십니다. 죽음 이후만이 아니라 이 지상의 삶에서도 그러기를 바라시지요. 구원과 성화는 죽음 이후 어느 순간에 짠 하고 이루어지는 사건이기 이전에 이미 이 지상에서부터 돋아나 자라는 나무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폐지하시고 복음으로 생명과 불멸을 환히 보여 주셨습니다"(2티모 1,10).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죽음 이후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버린 사람입니다. 구원과 성화는 미래의 사건이 아니라 이제로부터 영원히 누리는 상태이니까요. 또 당신 죽음으로 죽음을 폐지하시고 우리의 생명이 되어 주신 예수님 덕분에 우리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생명을 꿈꿀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벗님! 벗님은 지금 구원과 성화의 여정을 걷고 계시지요? 그렇다면 죽음 이후에도 그처럼 살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살아 숨쉬고 춤추며 지상에서부터 몸에 밴 찬미와 흠숭, 사랑을 완성해 나갈 것입니다. 그 행복을 앞당겨 전율하고 용약하는 오늘 되시길 축원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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