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제10주간을 시작하는 오늘부터 연중 제21주간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마태오 복음을 묵상합니다. 오늘은 제2의 모세로 산 위에서 새로운 율법을 선포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우리를 만드시고 당신 자녀로 부르신 주님의 궁극적인 바람이 무엇인지 담고 있습니다.
"행복하여라."
예수님의 산상 설교에 수 차례 반복되는 말씀입니다. 축하처럼 들리기도 하고 명령이나 권유처럼 들리기도 하는데, 중요한 건 그 안에 위로와 축복이 가득하다는 점입니다.
이민족의 압제와 가난, 율법주의의 부담감에 짓눌려 살던 당시 이스라엘 민중에게 예수님의 행복 선언은 관점의 전환을 일으킵니다. 아마 누군가는 '아, 나도 행복한 거구나!' 하는 자각을 선물 받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행복이 꼭 성공과 재물에만 있는 게 아니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을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가난, 슬픔, 온유, 정의의 부재, 자비, 마음의 순수, 평화, 박해."
사실 예수님이 전하신 행복의 조건은 세상 눈에는 매력이 많이 떨어집니다. 세상은 대개 이 덕목을 버리고 반대 조건을 쟁취하라고 부추기지요.
적어도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부유하고, 높이 오르고, 타협에도 능하며, 건강하고, 주위의 인정과 찬사를 받아야 행복하다고 여깁니다. 어느새 인간의 행복은 외적 조건에게 고삐와 칼자루를 내 준 꼴이 되어 버렸습니다. 사람들은 행복의 진정한 근원이 어디인지 잊어버린 듯하지요.
제1독서에서는 하느님을 열렬히 사랑하고 섬긴 불같은 예언자 엘리야가 등장합니다.
"이곳을 떠나 ... 숨어 지내라"(1열왕 17,2).
엘리야는 그가 전한 하느님 말씀 때문에 박해의 표적이 됩니다. 예언자의 운명이지요. 그런 엘리야를 주님께서 숨겨 주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까마귀들이 그에게 ... 빵과 고기를 날라 왔다. 그리고 그는 시내에서 물을 마셨다"(1열왕 17,6).
아무리 예언자가 하느님과 통교하고 그분 말씀을 전달하는 귀인이라 해도, 예언자도 사람입니다. 먹고 마셔야 살고 위협과 공격에 움츠러들며 죽음을 두려워하는, 우리와 같이 육신을 지닌 존재지요.
주님께서 까마귀를 통해 보내신 빵과 고기는 그를 지탱하는 영육의 양분입니다. 정신을 지탱해 줄 보호와 지지의 표상이기도 하지요. 거기에 더해 시내의 물은 깊은 상징성을 지닙니다.
외딴곳에 고립되어 숨어 있는 처지이지만 하느님은 엘리야를 물 곁에 두십니다. 물은 생명입니다. 만물을 살게 하고 꽃과 열매로 풍요롭게 하지요. 또 시들시들 말라 죽어가는 것을 되살립니다. 어떠한 처지에서도 물이 있으면 견딜 수 있습니다.
믿는 우리에게 물은 생명을 주시는 주님, 깨끗하게 하고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을 상징합니다. 지금 엘리야에게 필요한 것은 육신의 생명을 유지할 물리적 빵과 고기, 심리적 위안을 위한 메신저(까마귀), 그리고 고독과 두려움을 견디게 해 줄 주님의 현존(물)입니다.
오늘 예수님 말씀에 비추어 보니 어쩌면 엘리야야말로 진정 행복한 사람 같습니다. 그는 가난하고 박해 받으며 정의에 목말랐지요. 오직 말씀만이 그의 사명이었으니 악에 대적할 어떤 힘도 행사할 줄 몰랐습니다. 슬픔과 두려움에서도 자유롭지도 못했고요. 게다가 주님이 기억해 주시지 않으면 육신의 생명조차 부지할 수 없는 고립된 처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야는 주님을 향해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같은 사랑에 사로잡힌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의 열정은 자기 재물이나 성공을 향하지 않고 오로지 주님의 말씀과 방향성을 같이 했지요. 분명 그는 성령의 사람, 사랑의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벗님! 벗님은 지금 행복하시지요? 행복하다면 세상 눈에 행복합니까, 주님의 눈에 행복합니까? 육적으로 행복합니까, 영혼까지 행복합니까?
하느님은 우리를 행복하라고 창조하셨고, 행복하라고 부르셨습니다. 한 주간을 시작하는 오늘, 주님과 함께 행복한 날 되시길 축원합니다. 행복은 하느님의 위로와 돌봄을 체험하며 성삼위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누리는 상태이니, 벗님은 참으로 복되십니다. 하늘 나라가 벗님의 것입니다.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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