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6월 9일 연중 제10주간 화요일

dariaofs 2020. 6. 9. 01:35

 

오늘 미사의 말씀은 하느님 앞의 선함이 무엇인지 밝혀 줍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마태 5,13).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 5,14).

먼저 예수님께서 우리가 세상에서 어떤 존재인지(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말씀하십니다. 소금과 빛! 둘 다 인간 생명과 분리될 수 없는 요소지요.

소금은 몸의 신진대사를 유지하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입니다. 음식의 맛을 내는 효능 뿐만 아니라 생명을 유지하고 인체 조직을 활성화하는 본질적 구성요소라고 하지요.

빛은 생명체를 성장시키고 신진대사를 촉진하지요. 또 활동 가능한 환경을 조성합니다. 빛의 가치를 깨달은 인간은 해, 달, 별 등 자연의 빛이 주는 효력을 연장하기 위해 전기를 만들어 빛의 시간을 연장해 사용하지요.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6).

예수님은 소금처럼, 빛처럼 사는 삶을 "착한 행실"이라는 말씀에 집약시키십니다. 착함에 대해서는 사회 도덕 윤리적으로 다양한 정의가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예수님께서 당부하시는 착함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제1독서에서는 엘리야와 사렙타 마을 과부 이야기입니다.

"그 무렵 엘리야가 숨어 있던 시내의 물이 말라 버렸다"(1열왕 17,7).

엘리야의 생명을 지탱해 주던 시냇물이 말랐다고 합니다. 이미 가뭄이 심화되었음을 보여주기도 하고, 또 하느님께서 보호하시던 예언자의 생명도 위협받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기도 하지요.

하지만 이 위기는 엘리야가 하느님 뜻을 이루기 위해 말라버린 시내 주변을 떠날 시간이 되었음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뜻은 가뭄으로 세상과 모든 생명체를 멸하시려는 것이 아니니까요. 오히려 가뭄이라는 위기 상황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호기가 되지요.

"그러나 먼저 나를 위해 ... 그런 다음 당신과 당신 아들을 위하여"(1열왕 17,13)

생의 마지막 끼니를 준비하는 궁핍한 과부를 향해 엘리야가 요구합니다. 자칫 이기적인 갑질로 비칠 수도 있지만, 깊이 머물러 보면 인간이 하느님 앞에서 가져야 할 본질적 마음가짐을 담고 있는 도전입니다.

"착한 행실"은 '나 먼저'가 아니라 '너 먼저' 그리고 이를 통해 '하느님 먼저'라는 정신의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선 나부터 잘 살고 보겠다는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이웃의 필요와 하느님의 영광을 염두에 두는 마음입니다. 그 밑바탕에는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대한 신뢰와 믿음이 깔려 있지요.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진정한 "착한 행실"은 하느님의 영광을 목적으로 합니다. 퍽 괜찮은 사람으로 비치고자 하는 자기 영광의 사심이 들어설 자리가 없지요. 크건 작건, 드러나건 드러나지 않건 모든 "착한 행실"은 하느님 찬양의 도화선이 되어야 합니다.

"단지에는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병에는 기름이 마르지 않았다"(1열왕 17,16).

사렙타 과부는 엘리야를 통해 이르신 하느님 말씀을 믿고 따름으로써 참 생명을 얻습니다. 포기하려던 육신의 생명에 더하여 진정 믿음과 의탁의 열매를 체험하게 되었으니까요.

떨어지지 않는 밀가루와 마르지 않는 기름. 이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영적 생명을 지탱해 주는 양식의 원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보잘것없는 밀가루 떡으로 당신 몸을 이루시어 우리를 살리시고, 성령께서는 거룩한 기름으로 온갖 은사와 치유를 베푸시어 우리 생기를 돋우십니다.

바닥을 드러내지 않는 밀가루와 기름처럼, 하느님 영광을 위해 우리가 베푸는 "착한 행실"은 고갈되지 않습니다. 혹여 왕성한 신앙 활동과 봉사로 공허하고 지쳐간다면 그 지향이 누구의 영광을 향하고 있는지 돌아볼 일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우리는 소금의 역할로 하느님의 좋으심을 드러냅니다. 우리는 빛의 역할로 또 하느님의 좋으심을 드러내지요. 우리는 착한 행실로 하느님의 선함을 이루어 갑니다. 이 모든 것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지요. 우리는 지침도 고갈됨도 없이 세상에 그분을 보여 주는 "등경 위의 등불"(마태 5,15)입니다. 이를 통해 사랑하는 우리 하느님께서 찬양받으시길 빕니다. 세세 영원히.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