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6월 11일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dariaofs 2020. 6. 11. 01:24

 

오늘 미사의 말씀에서는 주님께서 사도들에게 바라시는 바가 잘 드러납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7).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수행하시는 복음 선포, 치유, 구마 등 하느님의 일을 할 능력을 받아가지고 길을 나섭니다.

 

가난하고 억압받는 민중에게 그들이 베풀게 될 구체적 능력들은 그들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힘이 아니지요. 그것은 파견하시는 분이 당신을 대신할 이들에게 잠시 맡기신 능력입니다. 곧 파견과 동시에 위임받은 하느님의 손가락입니다.

"지니지 마라"(마태 10,9).

자기가 받은 것이 제 능력으로 쌓은 것이 아님을 잘 아는 제자들은 앞으로 필요한 것들도 주님께서 그렇게 채워주시리라는 신뢰를 내적으로만이 아니라 외적으로도 증거해야 합니다. 보통 사람에게 만약을 대비해 무언가 여분의 것을 적당히 챙겨두는 것이 죄는 아니지만, 사도들에게는 그마저도 주님 손에 다 맡기라고 하시는 듯합니다.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마태 10,11).

"마땅한 사람"의 조건은 저마다 차이가 있을 겁니다. 함께 머무르며 일하기에 누구에게는 이런 사람이, 또 누구에게는 저런 사람이 알맞겠지요. 각자의 성향과 소명에 걸맞는 인연을 만나는 일은 하느님께서 안배해 주셔야 가능합니다. 오늘 제1독서의 바르나바와 사울처럼 말이지요.

"착하고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바르나바"(사도 11,24 참조)는 친히 사울을 찾아내어 새로운 길에 합류시키고 기꺼이 동료가 되어 줍니다. 사울에 대해 두려움과 의혹이 가시지 않은 이들도 바르나바를 보아서 사울을 받아들였을 것 같습니다.

"떠날 때까지"(마태 10,11).

예수님은 떠남을 전제로 말씀하십니다. 사도는 길을 떠난 사람입니다. 또 머물게 된 그곳에 안주하지 않고 다시 떠날 사람이기도 하지요. 사도의 삶은 순례길을 걷는 우리 모두의 축약판입니다.

"내가 일을 맡기려고 바르나바와 사울을 불렀으니 나를 위하여 그 일을 하게 그 사람들을 따로 세워라"(사도 13,2).

바르나바와 사울이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한창 활발히 선교 활동에 전념할 때 성령께서 이르십니다. 하느님의 뜻은 그 둘이 그곳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떠나보냈다"(사도 13,3).

그들은 순종합니다. 지상 삶에서, 더우기 제자의 삶에서 영원한 안주란 없습니다. 바람처럼 자유로운 성령에 이끌려 하느님의 뜻이 원하시는 곳 어디로나 떠나는 것이 제자된 삶의 일부입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 한때 서로에게 "마땅한 사람"이 되어 주었던 바르나바와 사울도 서로를 떠나야 할 때가 올 겁니다(사도 15,37-40 참조). 괜찮습니다. 당장은 갈등과 분열처럼 보일지라도 사심없이 주님의 뜻을 찾고 있다면 주님께서는 모두를 통해 당신의 일을 하실 것이니까요.

착하고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바르나바 성인은 바오로 사도가 교회에 자리를 잡도록 도와준 일등공신입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이방인 선교는 물론 초대교회의 신학적 기틀을 마련한 바오로 사도를 기릴 때 그의 진정한 파트너, 바르나바 성인도 함께 떠올리게 되지요. 바르나바 성인은 당장 자신이 빛나지 않더라도, 두각을 드러내는 존재가 꼭 자신이 아니어도 묵묵하고 충실히 하느님의 뜻을 추구한 진짜 사도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바르나바 성인께 우리 모두 착하고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되도록 전구를 청합시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이에게 기꺼이 손 내밀 수 있고, 그의 곁에서 충직한 협조자로 머무를 수 있는 겸손도 얻어주십사고 청합시다.

 

주님께 받은 것으로 만족하며 기꺼이 나눌 줄 알고, 또 머무를 때와 떠날 때를 아는 지혜도 청합시다.

성 바르나바,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