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6월 12일 연중 제10주간 금요일

dariaofs 2020. 6. 12. 01:59

오늘 미사의 말씀은 두 개의 주제로 다가옵니다.

먼저 인간 사이의 사랑 에너지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음욕을 품고 ...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 간음한 것이다"(마태 5,28).

성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공동체를 이루어 사랑으로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며 자손을 낳아 하느님 창조를 이어가는 매우 소중한 에너지입니다.

예수님은 단지 "간음해서는 안 된다"는 율법 규정을 외적으로만 지키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하십니다. 적극적으로 타인의 성적 결정권을 침해하지 않았다고 해서 모두 주님 앞에서 결백한 건 아니라고요.

인간은 그토록 소중하고 아름다운 성 에너지를 사랑으로 승화할 수도 있고 음욕으로 악용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이 둘의 차이를 보여주십니다.

"크고 강한 바람, 지진, 불"(1열왕 19,11-12).

호렙 산 동굴 속으로 몸을 피한 엘리야에게 주님께서 나타나십니다. 그런데 산을 할퀴고 바위를 부수는 바람이나 땅을 뒤흔드는 지진, 모든 걸 삼켜버리는 불이 한바탕 호렙 산을 뒤흔들어도 엘리야는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주님은 격정 속에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기적 쾌락과 순간의 만족을 탐하는 격정에 존중과 책임이 결여되면 거칠고 파괴적이 됩니다. 그 힘은 싹을 꺽고 꿈을 짓밟고 생명을 해칠 뿐 타인에게 성장도 위로도 되지 못합니다.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1열왕 19,12).

주님은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로 다가오십니다. 사랑입니다. 내 것을 주장하지 않고 상대를 억압하거나 조종하지 않는, 나지막한 위로의 속삭임입니다. 어쩔 땐 현존조차 가늠할 수 없이 고요히 위무하고 사라지는 여리고 다정하고 순수한 손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눈과 우리의 마음이 타인에게 이렇게 향하기를 바라십니다. 격정과 음욕을 걷어내고 하느님의 눈과 하느님의 마음의 시선으로 이웃을 바라볼 때 우리 부족한 사랑도 그분 사랑에 포개어집니다.

두 번째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입니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는 자는 누구나 그 여자가 간음하게 만드는 것이다"(마태 5,32).

예수님은 모세가 허용한 이혼장이 사회적 약자인 여성과 그 자녀들을 얼마나 심각한 궁지로 몰아넣는지 아시기에 이혼 사유를 불륜으로 제한하십니다. 그만큼 불륜은 사회적 윤리적 질서를 해치는 악이니 그렇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불륜은 하느님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의 배반을 칭하는 언어지요.

"이스라엘 자손들은 당신의 계약을 저버리고 당신의 제단을 헐었을 뿐 아니라 당신의 예언자들을 칼로 쳐 죽였습니다"(1열왕 19,14).

엘리야가 하느님께 고발하는 이스라엘의 행태가 곧 불륜입니다. 신랑이신 하느님에게서 마음이 떠나 하느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이민족의 우상을 기웃거리며 돈과 쾌락과 자기 안위에 열광하는 격정이지요. 하느님을 향하던 사랑이 방향을 잃으면 애욕과 욕정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느님이 그런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당신 자애를 거두지 않으신다는 것을 압니다. 인간은 하느님을 두고 불륜을 저지를지언정, 하느님은 불륜을 모르는 성실한 신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상대가 불륜을 저지르지 않았으면 사랑을 거두지 말라고 이르시지만, 사실 하느님은 불륜의 경우에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분이시지요. 그 증거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랑하는 벗님! 예수님의 단호하고 강한 어조의 말씀 안에서 사랑을 배웁시다. 우리 안의 무질서하고 정화되지 않은 격정에서 무엇을 빼어 던져버려야, 무엇을 잘라 던져 버려야 지고지순하고 충실한 하느님 사랑을 닮을 수 있는지 돌아봅시다.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게 되기까지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은 계속될 것입니다. 사랑 안에서 사랑을 배우는 하루 되시길 축원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