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은 모름지기 하느님 앞에서 제 분수를 알아야 한다고 오늘 미사의 말씀은 조곤히 이야기하십니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마태 5,33).
맹세는 사람이 자기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자기보다 위대하고 강한 존재의 명성과 힘을 걸고 스스로를 보증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니 맹세는 자신의 신용 문제를 넘어서, 걸고 맹세한 대상의 위상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말이 쉽다고 손쉽게 아무 맹세나 해서는 안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무엇도 함부로 맹세에 이용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늘, 땅, 예루살렘, 머리"
함부로 맹세해서는 안 되는 또다른 이유는, 사실 인간이 그 어느 것 하나도 제 것인 양, 제가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양 들먹일 권리가 없기 때문이지요. 하느님의 옥좌인 하늘, 하느님의 발판인 땅, 하느님의 도성인 예루살렘, 하느님의 피조물인 우리 지체 중 한 부분까지 그 어느 것 하나 우리의 권한에 속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당장 위기를 모면하려고 거짓으로 맹세를 하면 안 된다거나, 맹세한 바는 꼭 지키라는 옛 가르침은 사실 맹세를 지킬 힘이 인간 편에 있음을 전제합니다. 물론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하지요. 맹세한 바는 최선을 다해 지키려 노력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한치 앞도 모르는 인간에게 그마저도 불가능한 순간이 닥칠 때가 없지 않습니다. 인생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굳게 한 약속이 물거품이 되어 버리는 처절한 순간이 고의가 아니어도 찾아올 수 있다는 말입니다.
목숨보다 소중했던 신의와 명예가 땅에 떨어지는 비참함 속에서, 맹세조차도 하느님께서 지키게 해 주셔야 가능한 것임을 비로소 깨닫게 되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아예 맹세하지 말라고 하신 것 같습니다. 맹세에 대해서는 노력 외에 인간에게 부여된 권한은 사실상 없으니까요.
제1독서는 엘리사의 부르심 대목입니다.
"엘리야가 엘리사 곁을 지나가면서 자기 겉옷을 그에게 걸쳐 주었다"(1열왕 .19,19).
고대에는 옷이나 물건에 그 사람의 능력이 깃든다고 보았지요. 옷을 걸쳐 주는 행위는 자신의 소명을 상대에게 부여하는 의미가 됩니다. 더군다나 당대 독보적인 예언자 엘리야의 옷이니 이 태도는 단순한 증여라기보다 의미심장한 부르심의 의식입니다.
"다녀오너라.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였다고 그러느냐?"(1열왕 19,20)
흥분하는 엘리사에 비해 엘리야는 차분합니다. 이 대답은 무심하게 들리기까지 할 정도입니다.
사실 오늘의 이 대목이 "아벨 므홀라 출신 사팟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네 뒤를 이을 예언자로 세워라"(1열왕 19,16) 하고 분부하셨던 주님의 말씀을 실현한 것에 지나지 않지요. 바로 어제 들었던 독서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주님께서 당신 계획에 따라 이미 준비하고 세우신 이를, 그 주님께서 만나게 해 주셨으니, 엘리사의 소명 기사에서 엘리야의 권한은 매우 미약합니다.
아니,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지요. 엘리야는 자신에게 주어진 분수를 잘 알았기에 권위를 부리거나 으스대지 않고 오히려 한 걸음 떨어져 관조하듯 제 역할을 수행합니다. 그 둘을 포함해 온 세상이, 온 역사가 주님이 내신 길로 흘러왔고 또 흐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라고만 하여라"(마태 5,37).
그저 우리는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예" 또는 "아니오"만 하면 됩니다. 절대자를 들먹이는 맹세나 핏대 올리는 호소, 심지어 눈물까지도 진정성에 가닿기엔 함량 미달인 경우가 허다하다는 걸 우리는 알아버렸지요. 그러니 그저 귀를 쫑끗 세우고 영혼을 활짝 열어 하느님의 뜻만을 좇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그 어느 것도 내 것은 없습니다. 나를 치장하기 위해 함부로 차용해서 써도 되는 이름도 없습니다. 하느님 뜻이면 "예!" 하느님의 뜻이 아니면 "아니오!" 하는 것이 우리의 최선일 것입니다. 그마저도 결과는 오롯이 주님 몫이지요.
사랑하는 벗님!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축일입니다. 안토니오는 가장 대중덕인 인기가 많은 성인이지요. 성 안토니오처럼 "주님만이 우리 몫의 유산"(화답송)이심을 기억하며, 겸손하고 치열하게 하느님의 뜻을 찾는 하루 되시길 기도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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