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 안에서 우리는 참으로 어처구니없이 불의와 마주합니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마태 5,39).
예수님 말씀이 점점 어렵게 다가옵니다. 불의와 억압이 판치는 세상에서 가진 것 없고 힘 없는 이들은 제 한 몸 지켜내기도 버거운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짓밟히지 않으려고 안간힘 쓰고, 행여 당하게 되면 되갚아주고 싶어합니다.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럴 수밖에 없어 보이는데 예수님의 가르침은 영 다른 세상 말씀같습니다.
제1독서에서는 아주 잔인무도한 폭력이 등장합니다. 재산과 권력으로 거칠 것 없는 아합 임금 내외가 포도밭 임자인 나봇에게 저지르는 만행입니다.
아합은 자기 궁 곁에 정원을 꾸미고 싶어 나봇의 상속 재산인 포도밭을 탐합니다. 정상적인 이스라엘 자손이라면 조상 대대로 이어온 상속 재산을 함부로 처분하지 않지요. 아무리 임금이어도 하느님을 경외하고 율법을 존중한다면 이런 요구를 하지 않을 겁니다.
나봇 이야기는 사회 정의와 권선징악의 주제를 숙고하도록 돕는 좋은 텍스트가 됩니다만, 오늘 말씀께서는 저를 다른 길로 이끄십니다.
"그대의 포도밭을 나에게 넘겨주게. 그 포도밭이 나의 궁전 곁에 있으니 그것을 내 정원으로 삼았으면 하네"(1열왕 21,2).
아합 임금의 터무니없는 요구 안에 감추어진 상징 안으로 들어가 봅시다.
하느님과, 신부인 하느님 백성의 사랑을 노래한 아가에는 "포도밭"과 "정원"의 표상이 풍부히 등장합니다.
"아침 일찍 포도밭에 나가 포도나무 꽃이 피었는지 ... 우리 보아요. 거기에서 나의 사랑을 당신에게 바치겠어요"(아가 7,13).
포도밭은 하느님과 인간이 사랑을 나누는 자리입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되고 성령의 기운이 되는 포도주를 빚는 열매가 맺히는 곳이지요. 그런데 이 포도밭에 이르는 길은 결코 녹록하지 않습니다. 아가의 여인 역시 환희와 상실의 굴곡진 여정을 거쳐 포도밭에 도달하지요. 우리가 걷는 신앙 여정, 인생 여정과 다르지 않습니다.
"나의 포도밭은 오직 나에게만 속한다오"(아가 8,12).
포도밭은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여인,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그녀에게 하느님 외에 다른 주인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온전히 소유하고 온전히 속한 관계, 바로 하느님과 당신 백성과의 관계입니다.
이 관계를 깨뜨리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건 악입니다. 도움이나 호의를 가장하고 들어와 비등한 대가를 제시한다 해도 악입니다. 그래서 아합은 하느님에게서 이스라엘을, 그리스도에게서 인류를 분리시키는 악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결국 나봇은 이제벨의 계략과 음모로 스러집니다. 거짓인 줄 알면서도 이에 동조해 무고한 이를 해친 자들은 그것이 충성이라 여길 겁니다. 물론 포도밭도 당장은 아합의 손아귀에 들어가겠지요.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다시 이 말씀을 마주합니다. 예수님의 요구는 점점 더 구체적이 되어 갑니다. 오른뺨 친 이에게 왼뺨도 대주라고, 속옷 달라는 이에게 겉옷도 주라고, 천 걸음 가자고 강요하면 두 말 않고 그 곱절로 가주라고, 달라면 주라고, 꿔달라면 꿔주라고...
이제 마음 깊숙한 곳에서 질문이 하나가 올라옵니다. "도대체 왜 그래야 하죠? 그렇게 해서 얻는 게 뭐죠?"
사실 예수님은 그처럼 어려운 요구를 우리에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분이 바로 오늘 말씀 안에서 나봇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포도밭인 우리, 사랑하는 신부인 우리를 지키시려다 무참히 희생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당장 비참한 죽음으로 모든 것을 잃은 듯 보였지만, 결국은 부활로써 모든 영혼을 구원하고 차지하십니다! 아합과 이제벨이 피로 약탈한 포도밭을 누리지도 못하고 엘리야 예언자의 전언대로 비참히 생을 마감한 것처럼(1열왕 21,17-26; 22,29-40; 2열왕 9,30-37 참조), 결국 악은 주님 앞에서 패배합니다.
당장에는 무도한 악행과 무죄한 이들의 희생이 전면에 보이지만, 예수님의 희생제사는 그 너머에 무언가 있다고 속삭입니다. 악에 대한 승리와 부활에 대한 믿음으로 묵묵히 수난과 죽음의 여정을 걸으신 예수님은 그래서 당신이 아시고 친히 가신 길을 우리에게 권고하시지요. 그분은 그러셔도 됩니다. 충분히 자격이 있으시지요.
사랑하는 벗님! 아까의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도대체 그렇게 해서 얻는 게 뭐죠?"
이 답 역시 오늘의 말씀 안에 들어 있습니다.
"주님께 청하는 오직 한 가지 나 그것을 얻고자 하니 내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사는 것이라네"(영성체송).
그렇습니다! 억울한 죽음으로 목숨을 잃은 나봇은 하늘 나라에서 비옥한 포도밭을 영원히 차지할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맞서지 않고, 내어주고, 가 주고, 양보하고, 물러서 준 양선한 이들도 그러할 것입니다. 지상에서건 천상에서건 양선한 이들이 한 평생 살 주님의 집은, 주님과 나누는 뜨거운 사랑이 포도주로 빚어지는 아름답고 평화스런 포도밭입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그 사랑에 취해 행복하지요.
이제 예수님의 요구가 강요 아닌 초대로 느껴집니다. 주님과 나의 사랑의 포도밭을 지키는 일 말고는 과감히 내려놓고 내어 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지요. 조금 잃고 조금 손해 보더라도 마음과 영으로 더 큰 부요를 차지하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무엇보다 사랑을, 하느님을 차지하십시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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