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6월 16일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dariaofs 2020. 6. 16. 05:08

오늘 미사의 말씀은 아버지처럼 사랑하라고 이르십니다.

"원수를 사랑하여라"(마태 5,44).

원수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개인차가 있을 겁니다. 대개는 나와, 내가 사랑하는 이들, 내게 소중한 이들의 목숨을 빼앗거나 상해를 입힌 사람을 가리키지요. 하지만 이념과 사상이 달라서 서로 맞서고 대적하는 이들을 원수의 범주에 넣기도 합니다.

"이 내 원수! 또 나를 찾아왔소?"(1열왕 21,20)

제1독서에서 아합 임금이 엘리야에게 외칩니다. 엘리야는 나봇의 일로 분노하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러 위험을 무릅쓰고 아합 임금 앞에 섰지요. 아합은 무장을 하지도 않고 폭력을 쓸 이유도 없는 엘리야를 왜 원수라 부를까요?

원수의 범위에는 사사건건 나를 공격하고 상처 입히는 이들은 물론, 나와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도 포함됩니다. 내 생각이나 계획과 대립각을 세우고 엇나가는 이, 내 어둠과 죄악에 대해 직언을 하는 이, 결국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도 넓게 보면 적이고 원수일 수 있습니다.

"아합은 이 말을 듣자 제 옷을 찢고 자루옷을 걸치고 단식에 들어갔다"(1열왕 21,27).

나봇에게 저지른 극악무도한 범죄에 대해 하느님께서 상응하는 징벌을 내리시리라는 예언자의 전언에 아합은 당장 태도를 바꿉니다. 옷을 찢고 자루옷을 걸치고 단식을 하는 것은 회개와 참회의 전형적 행동입니다. 바라 마지않던 포도원을 차지한 기개 따위는 눈씻고 찾아 볼래야 찾을 수 없습니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아합 임금이 원수라 칭할 정도로 성가시고 불편한 존재인 엘리야의 말을 들었다는 점이고, 그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느님을 믿었다는 점입니다. 원수라 여겼던 존재에게서 자기 성장의 단서를 발견했다고 한다면 너무 거창할까요...

"그가 내 앞에서 자신을 낮추었으니"(1열왕 21,29).

결국 하느님은 자신을 낮춘 아합 임금의 태도를 보시고 내리시려던 벌을 유예하십니다. 그 태도에서 통회의 마음을 보신 겁니다. 나봇의 억울한 죽음을 생각하면 당장 두 쪽을 내어 처단해도 시원찮을 악인이지만, 아합 역시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피조물이지요.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

예수님의 자상한 당부입니다. 우리가 당장 나를 힘들게 하는 원수에게 집착해 하느님 자녀라는 본질을 놓치지 않길 바라시는 마음에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인간 실존을 잘 아시는 그분은 원수 사랑이 감정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그리 쉽지 않다는 걸 모르시지 않기에 우격다짐하듯 강요하지는 않으시지요. 그저 너희 아버지처럼, 너희가 사랑하고 또 너희를 사랑하는 그 아버지처럼 되어 보라고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에는 경계가 없습니다. 구분하고 나눠서 일부분만 사랑한다면 그건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의 원천이신 하느님께서 그러실 수 없기 때문이지요. 하느님의 사랑으로 사랑할 때 사랑입니다. 공정하고 정의롭고 치우침 없는 사랑, 나를 낮추고 너를 높이는 사랑, 나를 죽여 너를 살리는 사랑입니다. 이에 반하는 것은 편애와 집착이고 자기애와 욕정, 애욕과 과시일 뿐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혹 원수로 여겨지는 이가 있습니까? 그이 때문에 힘드시죠? 그를 포함해 온 세상 모든 피조물을 하느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뜨겁고 진실하게, 담백하고 순수하게 아버지의 사랑을 닮아보려 애써 봅시다. 그 자체로 이미 우리는 아버지 사랑 안에 있습니다.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