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내어 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리는 오늘, 미사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그렇게까지 하신 이유를 군더더기없이 밝혀 줍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요한 6,56).
대개 입을 통해 섭취된 음식은 몸에 흡수되어 그 사람의 피와 살이 됩니다.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그 사람 몸의 구성 성분과 건강 상태, 에너지가 달라지지요.
우리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받아 모심으로써 매일 조금씩 더 예수님을 닮아갑니다.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도 우리 안에 머무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굳이 이 방식, 기꺼이 먹히는 방식을 택하신 것은, 그분이 우리와 길이길이, 영원히 함께하고 싶으셔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무언가를 섭취해 영양분을 취해야만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인간 육체의 가장 기초적인 필요니까요.
"그 축복의 잔은(빵은) 그리스도의 피(몸)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1코린 10,16)
사도 바오로는 우리가 성체와 성혈을 받아 모심으로써 그분 몸과 피에 동참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동참은 그저 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을 넘어서는 일치를 의미합니다. 서로 섞이고 융화되어 하나가 되지요. 이 관계성에 이르면 이제는 다시 둘로 각각을 갈라낼 수 없습니다.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1코린 10,17).
동참은 주님과 우리의 일치뿐 아니라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시는 모든 이의 일치를 지향합니다. 각자 저마다 모신 예수님의 몸이 하나이니 우리 모두는 공통 분모를 품게 되고 서로 연결됩니다. 예수님은 세대를 이어, 역사를 관통해 하나 됨을 이어갈 수 있는 길을 성체와 성혈로 이루십니다.
제1독서에서는 성체성사의 본질이 "기억"임을 모세의 목소리를 빌어 강조합니다.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인도하신 모든 길을 기억하여라"(신명 8,2).
기억은 당시의 놀라움과 감사와 경외심이 영혼과 마음에 각인된 상태입니다. 그에게 구원은 과거 어느 때 발생했던 단발적 사건이 아니라 매순간 자신에게 재현되는 사랑의 흔적입니다.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내신 주 너희 하느님을 잊지 않도록 하여라"(신명 8,14).
사랑의 기억은 그것을 망각하지 않는 동안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 사랑이 미약해서가 아니라, 망각과 동시에 우리 자신이 무심해져 버리기 때문이지요. 놀라움과 감사와 경외심이 사라진 영혼에게 사랑의 기억은 각자의 역사 안에서, 그 흔한 광고 전단지만도 못한 책갈피처럼 바래어 갈 뿐입니다.
인류를 위해 당신 몸을 죄인들처럼 내어주신 예수님의 사랑도 우리 각자가 사무치게 체험하고 전율한 만큼, 기억하고 간직하며 그리워한 만큼 삶의 기적이 되고 영향력이 되지요.
사랑하는 벗님! 오늘 이 거룩한 축제를 지내며 주님께서 나에게 이루신 구체적 사랑의 자취를 기억하고 놀라고 감사하고 경외하는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지극한 사랑의 선물인 성체와 성혈을 통해 주님과 서로에게 머물러 그분과 하나 되고 일치를 이루는 기쁨도 누리시길 빕니다. 아울러 주님과의 일치가 모든 형제 자매들과의 일치로 나아가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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