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천사 축일인 오늘, 우리는 미사의 말씀에서 천사가 어떤 존재인지 배웁니다.
복음에서는 나타나엘과 예수님의 만남 장면이 그려집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에게는 거짓이 없다."(요한 1,47)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을 보고 말씀하십니다. 한 인간으로서 예수님께 이런 칭찬을 받는다면 세상 더 바랄 것이 없겠지요. "참 이스라엘 사람"은 불륜과 죄와 배반으로 부정해지기 전, 하느님과 계약을 맺은 순결한 신부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계약 상대로 불림 받아 주님과 약속을 나누던 그 순간의 이스라엘에게는 거짓도, 계산도, 속셈도 없었습니다. 주님의 신부, 그분 백성이 된 감사와 영광으로 충만한 상태였지요. 예수님은 나타나엘이 그런 순결함을 간직한 채 하느님 나라를 고대하는 사람임을 보셨고 아셨습니다.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요한 1,49)
나타나엘이 화답합니다. 한 쌍의 연인이 서로를 향해 사랑의 환성을 올리는 아가의 한 장면이 연상됩니다. 서로는 서로를 알아보고 기쁨에 겨워 외칩니다. 티없이 순수한 바라봄과 알아봄, 그리고 확신의 순간입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51)
이 말씀은 우리를 창세기의 한 대목으로 데려갑니다. 에사우를 피해 하란으로 가던 야곱의 꿈 이야기입니다.
"꿈을 꾸었다. 그가 보니 땅에 층계가 세워져 있고 그 꼭대기는 하늘에 닿아 있는데, 하느님의 천사들이 그 층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창세 28,12)
야곱과 하느님을 잇는 층계는 사다리와 같습니다. 사람의 아들이시며 참 하느님이신 예수님은 하느님과 세상을 잇는 존재시지요. 그 위를 하느님의 천사들이 오르내립니다. 천사는 메신저의 역할을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람을 보호하지요.
"하느님 현존, 하느님의 집, 하늘의 문"(창세 28,16-17 참조)
야곱이 꿈에서 깨어나 고백하였듯이,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하늘 계단의 자리가 곧 하느님 현존의 자리이고 하느님의 집입니다. 하늘의 문이기도 하고요. 예수님이야말로 이 세상에 드러나신 하느님의 현존이시고, 하느님의 집인 성전이며(요한 2,21 참조), 하늘의 문이십니다.(요한 10,9 참조) 그러므로 나타나엘에게 하신 예수님의 이 말씀은 참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적 뿌리를 일깨우신 것입니다.
제1독서에서는 하느님과 사람의 아들이 만나는 환시 장면이 장엄하게 펼쳐집니다.
"그분을 시중드는 이가 백만이요, 그분을 모시고 선 이가 억만이었다."(다니 7,10)
"연로하신 분"으로 표현되는 하느님 주변에 천사들이 운집해 있습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하느님을 찬미하고 시중들며 섬깁니다. 백만, 억만이라는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를 의미하지요.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 연로하신 분께 가자, 그분 앞으로 인도되었다."(다니 7,13)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앞으로 나아옵니다. 인간 세상으로 치자면 황제의 대관식과 같은 장면이 펼쳐집니다.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사람의 아들께 주어지고, 이제 온 세상 모든 민족이 사람의 아들을 섬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앞으로 보게 되리라고 말씀하신 광경은 단순한 천사들 발현을 뛰어넘습니다. 천사들은 하느님 현존을 보필하는 동시에 그분의 뜻을 품고 와서 전달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천사가 있다면 그곳은 하느님 현존의 자리이고 옥좌인 셈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주님께서는 이 지상의 고된 순례 여정을 걸어가는 우리에게도 끊임없이 천사를 보내주십니다. 하느님의 뜻이 전해지는 자리가 곧 하느님 현존의 자리이니, 우리는 천사를 알아보고 받아들이면서 하느님을 받아들입니다. 아울러 우리도 누군가에게 주님의 뜻을 전하는 천사의 역할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나 같이 부족한 사람이 언감생심 어떻게 천사일 수 있느냐고요? 오늘 말씀에 그 답이 들어 있습니다.
"주님을 찬미하여라, 주님의 모든 천사들아, 그분 말씀에 귀 기울이고 그분 말씀을 따르는 힘센 용사들아"(입당송)
"주님을 찬미하여라, 주님의 모든 군대들아, 그분 뜻을 따르는 모든 신하들아"(복음 환호송)
천사는 첫째, 주님을 찬미하는 존재입니다. 둘째, 주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존재지요. 셋째, 천사는 그분 말씀을 따릅니다. 또 천사는 그분 뜻을 행합니다. 그러니 우리도 이토록 부족하지만, 삶 안에서 주님께 찬미를 드리며 그분 말씀을 경청하고 따르면서, 주님 뜻을 행하면 감히 천사일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약한 우리를 위해 보내주신 천사를 두 눈 크게 뜨고 찾아보는 오늘 되시길, 또 나에게 허락하신 가족, 이웃, 온 세상의 이름 모를 가난한 형제자매들에게 부족하나마 천사로서 다가가는 하루 되시길 기원합니다. 서로에게 천사가 되어 주는 그 자리가 곧 하느님 현존의 자리니까요. 우리 모두의 축일을 축하드립니다.
대천사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저희를 온갖 위험에서 지켜 주시고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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