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9월 28일 연중 제26주간 월요일

dariaofs 2020. 9. 28. 09:52

오늘 미사의 말씀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보여 줍니다.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루카 9,46)


제자들 사이에서 서열 문제로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스승 예수님 다음으로 누가 가장 높은지 우열을 가리고 싶은가 봅니다. 세속적인 서열과 권력의 욕망이 아직 정화되지 않아서겠지요.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루카 9,48)


예수님께서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곁에 세우시고 답하십니다. 당신을 따르려면 세속의 질서와 역행해야 한다고 알려주십니다. 모두가 크고 힘 있고 강하고 부유한 사람이 되려고 경쟁하는 세상에서, 작고 힘 없고 약하고 가난한 사람이 되려고 애써야 한다는 뜻입니다.

"가장 작은 사람"

사실 예수님은 가장 작은 이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가장 작은 이가 되기를 원하셔서 실제로 가난한 목수와 한 시골 처녀의 아들로, 그것도 객지에서 태어나셨지요. 공생활 동안에도 머리 둘 곳 없는 떠돌이 가난뱅이셨습니다. 죽음도 가장 작은 자로서 맞이하셨지요. 모두가 고개를 돌리는 사형수로 생을 끝맺으셨으니까요. 가장 작은 이가 되는 것은 비우고 낮추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바람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제자들이 그 바람을 이어받기를 바라시지요.

"막지 마라"(루카 9,50)


예수님 말씀을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요한이 무용담 하나를 들려드립니다. 마귀를 쫓아내는 어느 사람이 자기들과 같은 제자 무리가 아니라서 못 하게 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를 막지 말라고 이르시지요. "우리"에게 속하건 속하지 않건 하느님의 선한 일은 널리 퍼져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일화는 제자들은 이미 큰 사람 흉내를 내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반증 같습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서 하시는 하느님의 선한 일들을 규제하고 막듯이 예수님의 제자들도 또다른 기득권 그룹을 형성해 버린 듯합니다. 이렇듯 악은 인간 욕망의 아주 미세한 빈틈을 노려 가차없이 파고듭니다.

"막지 마라"

예수님의 이 말씀에는 어떠한 욕망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 그분의 바람은 오직 하느님 뜻과 사람의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명성이나 권력 따위는 예수님의 관심사가 되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나 허용하십니다. 당신 자신의 죽음까지도 말이지요.

제1독서에서는 욥의 신앙 여정이 시작됩니다.

"흠 없고 올곧으며 하느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욥 1, 8)


주님께서 보시는 욥의 모습입니다. 그의 충실함과 신실함에 대한 주님의 평가가 부러울 지경입니다. 욥의 모습은 모든 신앙인의 귀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욥이 까닭 없이 하느님을 경외하겠습니까?"(욥 1,9)


사탄은, 주님께서 욥에게 축복을 내리셨으니 그가 응당 그런 거라고 응수합니다. 주님과 인간의 관계를 이처럼 사랑이 아닌 거래로 보는 것은 악에서 오는 생각임을 알 수 있지요.

"주님께서 주셨다가 주님께서 가져가시니, 주님의 이름은 찬미받으소서."(욥 1,21)


지금부터 욥에게 지난한 시련의 여정이 닥치겠지만, 아직까지 욥은 주님께 대한 신뢰를 거두지 않습니다. 그동안 누린 것이 모두 주님의 축복이었으니 거두어 가신들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그가 주님께 드리는 것은 원망이나 항변이 아닌 오히려 찬미입니다.

이 고백 안에서 예수님을 봅니다. 그분은 아버지의 구원 계획을 위해 당신께 떨어진 영광도 치욕도 가리지 않고 달게 받으셨지요.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예수님은 철저히 당신 자신을 잊으셨던 것입니다. 작아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는 모욕 당하고 조롱 받고 버림받고 실패하고 비천한 이로 내쳐지는 것을 받아들일 용기를 지닌 사람입니다.

제자들처럼 큰 사람, 높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것까지는 아니어도 작은 이가 되는 것이 두려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 세상의 어떤 면은 작은 이에게 무례하고 무자비하며 잔인하기까지 하니까요. 당장 제자들도 예수님을 등에 업고 "우리"가 아닌 이에게 힘을 행사할 지경이니 세상 편의 혹독한 갑질은 슬프게도 전염성이 매우 강한 듯 보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그래도, 작은 이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작고 작아져서 눈에 띄지도 않는 지경에 다다르면, 비로소 거기서 사랑하는 주님을 발견할 것이니까요. 작은 이 안에 예수님이, 그 예수님 안에 하느님이 계시니, 작아진다는 것은 스스로 하느님을 품는 것입니다. 또 작은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지금 우리가 속한 곳에서 작은 이를 환대하고 또 가장 작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우리가 찾고 바라고 갈망하는 주님의 거처는 가장 작은 이들의 마음이랍니다. 그러니 우리, 거기서 만납시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