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때"에 대해 일러 줍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루카 9,20)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군중은 그분을 세례자 요한이나 엘리야, 옛 예언자가 되살아난 것으로 여기는데, 예수님은 바로 당신 곁에서 생활하고 가르침을 받는 제자들이 과연 당신을 어떻게 여기는지 듣고 싶으신 듯합니다.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루카 9,20)
베드로가 자신도 모르게 고백합니다. 루카 복음서와 달리 마태오 복음사가는 이 대답이 베드로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알려 주신 것이라고 부연하지요.(마태 16,7 참조) 지금은 베드로가 주님의 영으로 예수님의 신원을 고백하는 때입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하게 분부하셨다."(루카 9,21)
예수님은 당신의 신원에 대해 함구령을 내리십니다. 지금은 제자들이 침묵해야 할 때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 말씀을 다 이해할 수 없지만, 스승이 명하시니 그대로 따라야 합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루카 9,22)
이어서 예수님은 당신의 수난과 죽음, 부활을 처음으로 예고하시지요. 사람의 아들이 맞이해야 할 "때"입니다. 고난, 배척, 죽임, 부활까지 단 몇 단어로 표현이 되고는 있지만 그 여정을 입에 올리는 것도, 듣는 것도 사실 두렵습니다. 고통의 길임을 뻔히 알고 향하는 여정은 모르고 가는 것 이상으로 어려우니까요.
제1독서에서 코헬렛 저자는 "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코헬 3,1)
하느님의 계획 아래 세상은 저마다의 "때"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모든 것을 제때에 아름답도록 만드셨다."(코헬 3,11)는 말씀이 참 멋지게 들립니다. 모든 피조물은 저마다의 때에 자신만의 충만함으로 활짝 피어나도록 창조된 것입니다. 하느님의 이러한 창조 계획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모든 피조물은 그 본성 안에 하느님의 때와 스파크를 일으키며 피어날 자기만의 때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시작에서 종말까지 하시는 일을, 인간은 깨닫지 못한다."(코헬 3,11)
그토록 정교하고 섬세하게 정성을 들인 하느님의 계획이 온 세상 모든 역사의 날줄 씨줄 안에서 면면히 흐르지만, 우리 인간은 알아채지 못합니다. 그저 당장 눈 앞에 닥친 일들을 감당하면서 한발짝씩 내디딜 뿐이지요.
그런데 이 무지가 반드시 저주나 불운만은 아닐 듯합니다. 각자의 "때"를 깨닫지 못하면서 묵묵히 나아가는 우리 인간은 어쩌면 몰라서 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모르니 희망하고, 모르니 기대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씩...
오늘 복음 속 제자들도 예수님의 말씀을 미처 다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스승의 때가 오면 그 영광을 어떻게 받아 누릴지, 누가 가장 높은지가 내내 그들의 관심사인 걸 보면 알 수 있지요.
그러니 지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침묵을 명하시는 것은 지당합니다. 인류를 위한 예수님의 운명과 그들의 욕망이 아직 화해하지 못한 지금은 코헬렛의 단언처럼 "침묵할 때"입니다. 하지만 언젠가 "말할 때"(코헬 3,7)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때가 완성된 후 제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변화될 것이니까요 제자들은 자기들이 들은 바와 본 바, 체험한 바를 증언하고 선포하게 것입니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그때가 과연 "말할 때"입니다.
"그들 마음속에 시간 의식도 심어 주셨다."(코헬 3,11)
주님께서 우리 마음 안에 심어 주신 "시간 의식"은 단순히 숫자로서의 시간 감각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 "시간 의식" 안에는 반드시 이루어질 아버지 뜻에 대한 순응, 결국 사랑으로 이끌리는 순리에 대한 신뢰, 마침내 이루어질 주님과 우리의 영원한 일치에 대한 기대가 담겨 있습니다. 이는 지식으로 가늠할 수 없는 의식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오늘 복음의 제자들처럼 우리도 무지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가 무엇인지, 나는 제대로 가고 있는지, 나의 때는 과연 언제인지, 찬란히 아름답게 빛날 "제때"를 속절없이 흘려보내고 만 것인지, 아니면 앞으로 올 것인지...
다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우리 여정이 "반드시 고난과 배척과 죽임을 당하실" 예수님의 여정과 별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두렵지만 진실입니다. 우리의 때는 이런 주님의 때와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와 같을 겁니다.
결국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이기시고 평화의 존재로 우리에게 되돌아 오셨으니 우리는 희망할 수 있습니다. 이 희망이 우리를 인내하게 하고 견디게 합니다. 이 희망 앞에서는 무지조차도 축복입니다.
그러니 언제일지 몰라도 괜찮습니다. "때"가 되면 그분께서 이루실 것이니까요. 사랑 안에서는 "때"를 알려고 날을 세울 필요가 없답니다. 주님의 "때"에 나의 "때"를 결합해 그분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동행하며 순례의 여정을 걷고 있는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오늘도 모르는 길을 믿고 희망하고 사랑하며 꿋꿋이 나아갑시다. 그 때를 기다리면서...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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