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영혼의 유연성에 대해 물으십니다.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마태 21,29)
예수님께서 두 아들을 비유로 질문을 던지십니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뜻을 거부했으나 곧 뉘우치고 생각을 바꾸어 명을 수행한 맏아들과, 대답은 넙죽 잘 했지만 따르지 않은 다른 아들 중에 과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한 것인지 유다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물으십니다.
예수님은 율법 조항의 문자적 의미를 철저히 지킬 뿐 아니라 이를 가르치고 또 그 기준으로 민중을 단죄하는 종교 지도자들과, 율법에 의해 죄인으로 낙인 찍힌 세리와 창녀들을 대비시키십니다. 죄인들과 동일 선상에서 비교되는 것부터 탐탁치 않은데, 그들 스스로 답한 비유의 결말이 자신들을 향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종교 지도자들은 내심 불쾌할 겁니다.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마태 21,32)
예수님은 진리 앞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은 그들을 지적하십니다. 율법과 관습에 고착되어 하느님의 새로운 선물에 눈을 감은 완고함을 꾸짖으시는 겁니다. 완고한 마음에는 스스로 옳다고 믿는 바에 절대 가치를 부여하는 오만과 자만심이 깔려 있습니다.
제1독서에서 회개와 구원의 가르침을 듣습니다.
"죄악을 버리고 돌아서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그는 자기 목숨을 살릴 것이다."(에제 18,27)
아무리 죄인이라도 회개하여 주님의 뜻을 실천하면 살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그의 옛 죄악에 연연하지 않으시겠다고 참 쿨하게 말씀하십니다.
반면 아무리 의인이라도 마음을 바꾸어 불의를 저지르면 죽는다고 하시니 좀 냉정해 보입니다. 그동안 일껏 쌓은 정의의 자취도 선처의 이유가 될 수 없는 듯합니다. 아마도 각별히 사랑하셨던 의인의 전향이 더 아프시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돌아서되 방향을 제대로 잡고 돌아서야 합니다. 주님을 향해, 진리와 사랑과 선을 향해 돌아서는 것입니다. 주님을 향해 잘 나가다가 애먼 곳으로 방향을 틀지 않도록 영혼이 늘 깨어있어야 합니다.
제2독서에서는 우리가 지녀야 할 영적 유연함의 모범을 보여 주십니다.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필리 2,7)
우리는 모든 역사를 통틀어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전향만큼 극적인 방향 전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이 당신의 것을 모두 버리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음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신비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필리 2,5)
하느님이 나약한 인간으로 오신 이 엄청난 신비가 가능한 것은 바로 이 마음 때문입니다. 자비와 용서의 마음, 애간장이 녹을 정도로 절절한 사랑과 자애의 마음, 바로 우리 주님의 마음이지요. 사랑하는 존재와 같아지기를 바라고 그 때문에 모든 것, 신분과 가르침과 율법까지도 내려놓으실 수 있는 사랑의 마음입니다. 그분의 유연함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히 옳고 바르고 성공적이기는 어렵습니다. 실수도 하고 착오도 겪으며 넘어지기도 하는 것이 사람이니까요. 오늘의 말씀은 '그 자리가 어디이건 거기서 일어나 당신을 향해 돌아서면 된다'고, 이토록 나약한 우리에게 던지시는 자상한 메시지입니다.
"가련한 이 올바른 길을 걷게 하시고 가난한 이 당신 길을 알게 하신다."(화답송)
사랑하는 벗님! 당신 자신이 "길"이신 주님은, 우리가 언제 돌아서야 할지, 어디로 방향을 돌려야 할지, 무엇을 솎아내고 내버려야 할지 헷갈리고 고심하고 방황할 때 친히 길을 알려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분께 돌아서려는 마음만 먹는다면, 깨우쳐 주시고 이끄시는 분은 그분이시니까요. 양심과 자연과 말씀과 이웃을 통해 그분은 매순간 우리에게 사인을 보내십니다. 선하고 진실한 채널들이 우리 곁에 늘 열려 있지요.
오늘 진리와 선과 정의는 고수하고, 사랑 아닌 것을 떠날 날 때에는 신속하고 유연하길 주님께 청합시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사랑을 향해 돌아섭시다. 거기서 우리는 주님을 마주할 것입니다. 그분을 바라볼 것입니다. 사랑을 발견할 것입니다. 꼭 그리 될 것입니다.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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