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9월 24일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dariaofs 2020. 9. 24. 05:57

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에게 매우 시의적절한 질문을 던집니다.

"요한이 ... 되살아났다. ... 엘리야가 나타났다. ...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났다."(루카 9,7-8)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 많이 놀라웠던 겁니다. 헤로데도 몹시 당황했다고 복음사가가 전할 정도지요. 마귀를 쫓아내고 병자를 치유하고 기가 꺽인 이들을 위로하는 모습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역사 안에 등장했던 여러 하느님의 사람들을 떠올리는 것 같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말하듯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다"는 코헬렛의 지혜가 이스라엘 사람들의 뼛속 깊이 박혀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자기들을 이롭게 했던 예언자와 선지자들의 되풀이 또는 환생이나 부활이라고 추측하고 간주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너무도 당연한 '무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메시아의 도래를 간절히 고대했더라도 하느님께서 친히 오실 것이라고까지는 짐작 못했겠지요. 메시아를 어느 지역 출신, 어느 지파의 후손의 사람의 아들로만 여긴 듯 보입니다. 실제로 예수님도 이 예언은 존중해 세상에 오셨고요. 그래도 성부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의 존재는 이스라엘뿐 아니라 이 세상에도
"완전한 새로움"이었으니, 경험과 관습에 기대어 살아온 이들에게 당연히 미지의 존재셨습니다.

그렇다고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다"는 말씀이 틀렸다는 것은 아닙니다. 태양 아래 모든 피조물에게는 그렇게 적용됩니다. 하지만 성자 예수님은 이 모두를 넘어서는 새로운 태양이시고 새로운 하늘이시지요. 그래서 예수님의 존재는 완전한 새로움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두고 이래저래 억측하는 군중이나 헤로데의 무지는 죄가 되지 않습니다.

성경 인물들 중에서 부정적 평가를 받는 헤로데지만, 그의 말에서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포착됩니다.

"이 사람은 누구인가?"(루카 9,9)

헤로데가 묻습니다. 자기가 무고하게 죽인 요한까지 떠올리는 걸 보면 마음에 찔리는 구석이 있긴 한가 봅니다. 하지만 두려움에서건, 앎에 대한 순수한 열정에서건, 사랑에서건 이 질문은 인간 삶에 중요한 화두를 제시합니다.

새로운 사람이나 사건을 맞닥뜨릴 때, 경험이나 선지식이 새로움의 자기 계시를 가려버릴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일생을 거처 우리 안에 차곡차곡 쌓인 선입견과 편견이 새로운 만남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되면 곤란하겠지요. 새로움을 마주하면, 있는 그 자체로 상대를 직관하며
"이 사람은 누구인가?" 하고 질문할 수 있는 새 마음이 필요합니다.

"만나 보려고 하였다."(루카 9,9)

질문은 갈망을 낳습니다. 보고 싶은 열망입니다. 내면에서 들썩이는 추측이나 지레짐작의 함정을 넘어서 진정한 앎의 관문을 통과하고 싶은 것입니다. 서로가 바람으로 이끌린 만남은,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일치를 기대합니다. 절대자와의 만남이 그렇고 사랑하는 이들의 만남이 그렇습니다.

그러니 새로움이 다가올 때 두려워하지 맙시다. 주님은 늘 새로운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선입견의 틀에 자신을 가두지도 맙시다. 과거에 묶이면 새로움이 가져온 은총을 놓칠 수도 있습니다. 그저 지금 새롭게 오신 이분이 누구이신지 직관하고 관상하며 방향을 돌려 만남에로 나아갑시다. 새로움은 "다시"나 "되풀이"의 향수에 젖은 상태에서는 알아보기 어려운 실재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지금 우리는 코로나19 감염증으로 인해 예전에는 미처 경험해보지 못했던 극한 현실을 지나고 있습니다. 흔히들 코로나가 끝나면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 예전의 익숙했던 행복을 되찾으리라 내심 기대를 합니다만, 우리가 질문하고 준비해야 할 것은 어쩌면 "새로움"일지도 모릅니다.

어느 신문 기사에서 마음을 때리는 구절을 만났습니다. "다시 시작할 것인지, 새롭게 시작할 것인지..." 이 질문은 사회 지도층이나 신학자, 교회 지도자들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실존과 삶의 자리에서 어떻게 새로운 사회, 새로운 교회, 새로운 질서를 맞이할 것인지 진지하게 기도하고 관상해야 합니다.

 

"'이 사람은 누구인가?' ... 만나 보려고 하였다."

오늘 이 질문을 안고 그분께 달려갑시다. 그분께서 지혜와 사랑과 진리를 주실 것입니다. 말씀을 품고 함께 기도하며 함께 이 고통의 시간을 헤쳐 나아갑시다. 우리가 먼저 새로움을 맞이할 새로운 피조물이 됩시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