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9월 21일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dariaofs 2020. 9. 21. 05:48

오늘 미사의 말씀에서 우리는 죄인을 외면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마태 9,11)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이 누구와 함께 계신지, 그들과 어떤 행동을 하시는지에 대해 과민하게 반응합니다. 바리사이들은 누구와 함께하며 어떤 행동을 하는지에 따라 사람을 구분 짓고 가르는 것이 그의 내면을 살피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사람들 같습니다. 그러니 세리 마태오를 제자로 부르신 예수님을 그들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하느님의 사람이고 예언자라면 의인과 죄인을 구별할 줄은 알아야 한다고 여겼겠지요. 어쩌면 예수님도 민족에게 반역하는 직업군에 속한 세리 마태오로 인해 제자단의 수준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들이 많아지리라는 것을 모르시지 않으셨을 겁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주저하시지 않고 마태오를 부르십니다. 사람을 구분하고 단죄하고 줄 세우는 건 세속의 방식일 뿐 하느님의 방식이 아니니까요.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태 9,13)

예수님께서 당신께서 오신 이유를 밝히십니다. 죄인들과 자신을 구분하여 그들과 다른 편임을 자부하는 바리사이들과 달리, 예수님은 자칭 의인들보다 죄인들 편에 서시겠다고 천명하시는 겁니다. 예수님께는 죄인도 자칭 의인과 다를 바 없이 아버지의 사랑하는 자녀일 뿐입니다.

스스로 의인임을 자부하는 이들 안에는 '나는 너 같은 자와 다르다.'는 배타적 차별 의식이 강하게 작용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배타성이 쉽게 구분과 차별로 이어져 영혼을 천박하게 만들고 일치를 저해하며 분열을 야기한다는 것을 잘 아십니다.

예수님의 내면 안에는 오히려 '하느님이고 사람인 나와 피조물인 그대가 사랑 안의 한 형제'라는 의식이 변함없이 흐릅니다. 이 마음이 곧 하느님의 창조 의도이고 사랑의 계획이지요.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부르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은혜의 양에 따라 우리는 저마다 은총을 받았습니다."(에페 4,7)

모든 사람이 각자 다 다른 것처럼, 우리가 받은 소명도 다 다릅니다. 물론 사도나 예언자, 목자 등 큰 카테고리는 존재하지만, 그 소명을 수행하는 각 개인의 특성만큼 개인 소명은 그 곱절로 다양해지고 풍요로워집니다. 각 개인에게 내리시는 은혜가 다르기 때문인데, 저마다 받은 은총의 다양성이 상호보완적으로 서로 작용해 교회는 더욱 온전한 완전성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서 일치를 이루고 성숙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 됩니다."(에페 4,13)

사도는 부족하고 나약한 죄인인 우리에게 무척 놀라운 비전을 제시합니다. 우리는 인간적으로 일치하고 성숙할 뿐 아니라, 하느님이시고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까지 다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비전이야말로 주님께서 우리를 사람이 지닌 한계 속으로 밀어넣은 채 당신과 동떨어진 존재로 봉인해 버리지 않으셨음을 의미합니다. 피조물에게도 당신의 신비를 누리는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 주신 것이지요. 사람은 구분하고 차별할지 몰라도 하느님은 절대 그런 분이 아니심을 보여 줍니다. 그분은 당신의 충만함까지도 활짝 열어 개방하고, 아낌없이 나눠주고 싶어하십니다.

주님은 자칭 의인들이 "왜 저자들과 함께하느냐?"고 비난하는 바로 그들(우리) 곁으로 가셔서(오셔서) 그들과(우리와) 함께하기를 주저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그들(우리) 마음에 "용기를 내어라. 너도 나처럼 될 수 있다."고 속삭이십니다.

오늘의 말씀은 내치고, 갈라내고, 밀쳐내는 사람과, 끌어안고, 포용하고, 받아들이는 주님과의 대비를 통해 우리가 받은 부르심에 대하여 묻습니다. 어느 직분으로 부르심을 받았건 주님에게서 온 소명은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에페 4,3)를 씁니다. 이 부단한 일치와 하나됨의 열망이 부족한 우리를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까지 끌어올려 줄 것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우리는 오늘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뭇사람들의 손가락질과 의혹의 눈초리를 받았을 마태오 사도의 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아마도 마태오 사도는 자기로 인해 예수님과 제자단에게 씌워진 오명이 송구하고 죄송했을 겁니다. 하지만 어떤 죄인도 놓치지 않으시려는 주님의 구원 의지는 그의 죄스러움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고 강력합니다.

어떤 처지에서 부르심을 받아 어떤 소명을 살아가건, 사랑과 평화, 일치를 보존하기 위해 애쓰는 이의 소명은 결국 그리스도의 충만함에까지 다다를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이 어떠한 상태에 있든 두려워말고 저마다 받은 은총을 활짝 꽃피우며, 각자 받은 소명을 당당히 살아가십시오. 그런 벗님으로 인해 주님께서 흐뭇해하며 기뻐하십니다. 아멘.

성 마태오,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