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9월 18일 연중 제24주간 금요일

dariaofs 2020. 9. 18. 05:36

오늘 미사의 말씀은 진정한 믿음의 길에 장애물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악령과 병에 시달리다 낫게 된 몇몇 여자도 그들과 함께 있었는데,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 ..."(루카 8,2)

복음사가는 예수님 선교 여행의 일행 중에 열두 제자는 물론 몇몇 여인들도 함께 있었다고 밝힙니다. 그당시 여성은 사회적 약자의 입장이었지요.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때에도 사람 수에 포함조차 되지 못하고 건너뛸 정도의 존재감이었으니까요.(루카 9,14 참조)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

여인들 중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이름이 맨 먼저 불리웁니다.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한 그녀는 남성 제자들이 도망간 마지막 십자가 죽음의 자리를 끝까지 지킨 여인이지요. 그녀는 열렬한 사랑과 용기, 열정의 아이콘입니다.

그녀가 일곱 마귀에 시달렸다는 것은, 복음사가가 굳이 완전의 수, 일곱을 밝힌 데서 알 수 있듯이, 인간으로서 더 망가질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피폐한 상태였음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 그녀의 신상에 대해 더 세밀한 정보를 주지는 않지만, 이 소개만으로도 그녀의 처지가 미루어 짐작이 됩니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그처럼 호되게 악의 힘에 묶여 있었다는 사실은, 예수님과의 만남이 그녀에게 얼마나 대단한 은총이고 구원이었는지를 반증합니다. 어둠이 짙었던 만큼 그녀가 받은 주님의 빛이 그녀 존재를 더욱 찬란히 밝혀 주었을 겁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 부활의 첫 증인이기도 합니다. 주간 첫날 이른 아침에 무덤가를 찾아 빈 무덤을 발견한 것도 그녀였고, 베드로와 요한에게 달려가서 알린 것도 그녀였지요. 또 제자들이 돌아가고 난 빈 무덤가를 울며 서성이다 결국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것도 그녀였습니다.
(요한 20,1-18 참조) 그녀는 주님의 영광스런 부활의 첫 증인입니다!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부활을 의심하는 이들에게 부활 신앙을 강조하여 일러 줍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다고 우리가 이렇게 선포하는데,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어째서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고 말합니까?"(1코린 15,12)

부활 신앙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예수님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으면 그분의 출현과 사망은 그저 하나의 해프닝처럼 이내 잊혀지고 말았겠지요.

부활 신앙은 생명의 주인이신 성부에게서 파견받아 오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을 통해 죽음이라는 인류 최대의 악을 정복하셨음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부활 사건을 통해 이 지상의 삶이 지난 후 주님과 누릴 영원한 생명, 완전한 행복을 꿈꾸고 기뻐합니다.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것입니다."(1코린 15,19)

부활 신앙은 우리 시선을 영원에로 돌리라고 촉구합니다. 현재 배부르고 풍요롭고 남부러울 것 없는 이들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지만, 지금의 결핍과 고통이 하느님 안에서 내면화되고 가치가 된 이들에게는 부활이 삶의 "희망"이고 "의미"입니다.

이 부활이라는 엄청난 사건이 한때 가장 처절히 무너졌던 한 여인을 통해 세상에 전해졌다는 것, 또 예수님께서 부활의 신빙성을 더해 줄 유망한 종교 지도자나 남성 제자들이 아니라 약자 중의 약자인 한 여성에게 부활의 첫 얼굴을 보여 주셨다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그 덕에 "부활"은 사실 관계 확인으로 증명되는 정보의 영역을 넘어 믿음의 영역으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부활을 압니까?"가 아니라, "당신은 부활을 믿습니까?"라고요.

뉴스 홍수 시대에 우리는 전해지는 정보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출처를 확인하기도 하고, 자신의 필터로 내용을 걸러내어 차단하거나 또 힘을 실어주기도 하지요.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그런 관점에서 인간에게 커다란 도전이 되었을 것이고, 지금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의 의혹스런 탄생부터, 제도에서 빗겨나간 삶, 자유로운 가르침, 치욕스런 십자가 죽음, 부활 소식의 메신저까지 그분은 관습이나 정통성, 공신력의 힘에 기대지 않으셨으니까요.

신앙이 우리에게 어떻게 전해졌는지 되돌아봅시다. 누구를 통해, 어떤 사건과 계기로, 어떤 매력으로 다가왔는지요? 확실한 것은, 주님 은총의 손길이 우리 각자에게 어떤 경로를 통해서 와 닿았건, 우리가 가진 색안경(선입견이나 편견, 고정관념, 관습, ..주의, ..관)이 크고 복잡하고 두터울수록 믿음에 이르는 길이 더 멀고 좁고 힘겨웠다는 점일 겁니다.

"저는 의로움으로 당신 얼굴 뵈옵고, 깨어날 때 당신 모습에 흡족하리이다."(화답송)

이 말씀을 믿는다면, 이 노래가 위안이 된다면, 이 고백이 희망이고 설렘이라면 그대는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 어떤 처지에 있건, 믿고 사랑하고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려고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으니까요.

사랑하는 벗님! 주님 곁에서 자기들의 것을 내놓아 그분을 돕고 섬긴 보잘것없는 여인들처럼 오늘도 겸손히, 열렬히 주님 곁에 머무르는 하루 되시길 기원합니다. 보잘것없는 이들을 통해 우리에게까지 전해진 신앙은 보잘것없는 우리를 통해 세상에 구원이 될 것입니다. 이 길에서 작은 이의 순수한 믿음으로 함께 손잡고 나아가는 모든 제자들, 특히 여성 제자들을 축복합니다. 예수님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으며 묵묵히 섬김의 길을 걸어갔던 여성 제자들처럼, 이 믿음의 길에 길동무가 되어주시는 벗님을 축복합니다. 고맙습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