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9월 19일 연중 제24주간 토요일

dariaofs 2020. 9. 19. 06:20

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를 향해 다가오시는 주님의 적극적인 불굴의 열성을 만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어라.' 하고 외치셨다."(루카 8,8)

성경 안에는 예수님의 큰 목소리가 들리는 대목이 가끔 등장하는데, 오늘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제대로 알아듣기를 간절히 바라시기에 그렇게 외치실 겁니다. 이 외침에는 군중의 무관심하고 건조하고 냉랭한 마음의 벽을 뚫으시려는 절절한 바람이 묻어납니다.

"길, 바위, 가시덤불"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는 씨가 자랄 수 없는 세 종류의 환경이 등장합니다. 말씀의 씨앗이 뿌려지기는 하지만, 짓밟히거나 말라버리거나 숨이 막히는 고통 속에서 씨앗이 새 생명을 틔우지 못하고 죽게 되는 상황들입니다.

"악마, 시련의 때, 인생의 걱정과 재물과 쾌락"
따로 비유의 뜻을 묻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풀어서 설명해 주십니다. 우리 마음에 심어진 말씀이 맥없이 스러지게 되는 원인들이라고 볼 수 있지요. 이 요소들은 인생길에서 우리 힘으로 피해가거나, 없는 듯 무시해버릴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것까지 포함해 삶이니까요.

'씨뿌리는 사람'의 모습을 관상합니다. 또 씨앗이신 말씀,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관상합니다. 그분은 땅을 가리지 않으십니다. 길바닥이건 바위건 가시덤불이건 개의치 않고 뿌려지십니다. 충분히 대접도 받고 이익이 될 곳을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이셔도 그러지 않으시지요.

그분은 짓밟히고 먹히고 말라버리고 숨막히는 고통에 삼켜지거나, 설령 죽음까지 당하게 되더라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지치지 않고 우리의 딱딱한 길바닥같은 마음, 물기도 온기도 없는 돌같이 굳은 마음, 세속적 욕망과 탐욕의 가시덤불이 무성한 복잡한 마음을 마다하지 않고 오시고 또 오십니다.

긴 세월 동안 말씀은 번번이 우리에게 거절당하고 외면 받고 문전박대를 당해오셨지요, 하지만 그분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마음이 당신을 받아들여 품고 새 싹을 틔울 때까지, 열매를 맺을 때까지 다가오고 또 다가오십니다. 우리 주님은 이런 분이시랍니다!

제1독서에는 대비되는 개념이 반복되어 등장합니다.

"썩어 없어질 것, 썩지 않는 것"
"비천한 것, 영광스러운 것"
"약한 것, 강한 것"
"물질적인 몸, 영적인 몸"
"첫 인간 아담, 마지막 아담"
"생명체, 생명을 주는 영"
"물질적인 것, 영적인 것"
"땅에서 나와 흙으로 된 사람, 하늘에서 오신 분"


사도 바오로는 우리가 본래적으로 타고난 육적인 생명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얻게 될 영원한 생명을 이처럼 구체적 언어로 대비시켜 반복합니다. 전자에 나열된 내용들이 우리에게 퍽 익숙한 인간의 실존적 상태라면, 후자에 나열된 말씀들은 은총으로 얻는 새 희망의 실체들입니다.

"우리가 흙으로 된 그 사람의 모습을 지녔듯이, 하늘에 속한 그분의 모습도 지니게 될 것입니다."(1코린 15,49)

오늘 제1독서의 대목은 양 극단의 개념들이 이처럼 조화하고 통합될 가능성을 제시하며 마무리됩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육의 지배를 받는, 물질 세상에 속한 인간이지만,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지니고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덕분에 하늘에 속한 그분의 모습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희망이지요.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루카 8,15)

땅의 토질이나 상태를 가리지 않고 당신 자신을 던지신 말씀께서 비로소 생명을 틔우실 곳을 만나십니다. 이 땅에서는 그간 겪으신 짓밟힘도 질식도 죽음도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그분이 온전히 받아들여지시고 녹아들어 씨앗과 땅이 한몸이 됩니다.

육의 조건에 갇힌 우리와 영이신 말씀께서 함께 머물며 서로에게 스며들어 하나가 되는 곳이 곧 성경이 "좋은 땅"이라 일컫고 그분이 열렬히 갈망하는 우리의 존재입니다.

이는 흙으로 된 우리가 영이신 말씀을 품을 때 일어나는 신비입니다. 우리가 나약하고 불결한 육적 조건을 떼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조건 안에 하늘을 품고 함께 변모하는 것이지요. 하늘에 속한 분의 모습을 담아, 그분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벗님! 내가 어느 땅인지, 무슨 땅이었는지 아픈 과거를 헤집으며 뉘우치느라 귀한 기도의 시간을 흘려버리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하느님의 모상인 우리는 이미 좋은 땅입니다. 우리가 지닌 인간적 한계와 죄스러움을 활짝 열어 말씀을 품고 머무르면 잠시 피폐해지고 퇴락했던 땅은 본래의 제 모습을 되찾을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를 치유하도록 내맡기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는 이 희망을 이야기하러 여기 모인 것이지요.

말씀이신 그분이 지치지 않으시니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 일입니까! 그분은 짓밟혀 죽더라도 우리에게 뿌려지시기를 마다하지 않으시니, 그분께서 이토록 적극적으로 우리 구원을 위해 다가오시는데 걱정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랑하는 벗님! 우리에게 오신 말씀을 겸손히 듣고 소중히 받아안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불확실성과 고통, 근심으로 복잡한 지상 생활에 지쳐가더라도, 하늘을 품을 수 있는 이 놀라운 신비에 감사드리며 마음껏 누립시다. 이 여정을 통해 부족한 우리가
"그분의 모습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그때까지 우리, 말씀 안에서 지치지 말고 서로 격려하며 함께 나아갑시다. 사람 냄새 물씬 나는 벗님을 축복합니다. 하늘 냄새 언뜻언뜻 풍기는 벗님을 축복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