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9월 17일 연중 제24주간 목요일

dariaofs 2020. 9. 17. 01:44

오늘 미사의 말씀은 사랑과 용서의 상관 관계를 알려 주십니다.

"그 여자가 향유가 든 옥합을 들고서 예수님 뒤쪽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랐다."(루카 7,37-38)

바리사이 시몬의 집에서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집니다. 예수님께서 한 여인으로부터 극진한 사랑의 대접을 받고 계시지요. 그녀의 행동을 하나하나 음미하면서 되풀이해 읽어 봅니다. 그녀가 하는 대로 발을 내어맡기신 예수님 마음에도 귀를 기울여 봅니다.

남녀를 떠나서, 의인과 죄인을 떠나서, 어느 집 누구인지를 떠나서, 사랑을 행하는 여인과 사랑을 받으시는 예수님 모두에게서 온 정성과 온 마음을 다 쏟아내는 진정성이 느껴집니다. 참, 아름답지요?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 죄인인 줄 알 터인데."(루카 7,39)

바리사이 시몬은 고을의 죄인인 여자가 제 집에 들어온 것도 못마땅한데, 거기에 더해 제 손님에게 손을 대니 마음이 불편했을 겁니다. 부정한 이와 닿으면 부정해지니까요. 그런데 예언자라는 사람이 죄녀의 손길에 순순히 자신을 내맡기고 있으니 어이가 없습니다. 이 사랑의 현장을 목도하면서 그의 속은 더 복잡해지고 까칠해집니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루카 7,47)

이미 그 속을 다 읽고 계신 예수님께서 그녀 대신 그녀의 행동을 설명해 주십니다. 용서와 사랑의 관계가 명쾌히 정리되는 말씀입니다.

죄인이라 손가락질 받는 그녀라고 왜 보란듯이 그 생활을 청산하고 떳떳이 새 삶을 살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하지만 한 인간을 옭아매는 가난이나 소외나 그밖의 여러 한계 상황들은 그리 쉽게 물러나줄 만큼 만만하지 않습니다. 복음 환호송에서 미리 우리에게 힌트를 주듯, 그녀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복음 환호송) 우리 모두의 표상입니다.

남의 집에 들어가 그 집 손님 앞에서 눈물 흘리며 마음을 쏟아놓는 것은 죄인이건 보통 사람이건 쉽게 할 수 있는 예사 행동이 아닙니다. 고을을 찾은 예수라는 사람을 만나려고 향유가 든 옥합을 준비하는 순간부터 이미 용서의 은총이 시작되었지요. 비록 그녀는 이 마음의 끌림을 신학적인 전문 용어로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지만, 그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동합니다. 사랑은 이처럼 설명이 불가능한 비이성적 비논리적 불합리성으로 다가오기도 하지요.

오늘 복음 속에서 여인은 마음이 끌리는 사랑을 표현했고, 바리사이 시몬과 식탁에 앉아 있던 이들은 율법에 묶여
"속으로"(루카 7,39.49) 끊임없이 구시렁거리지요. 사랑한다면 알 수 있는 신비에 접근할 권한이 아직 그들에겐 없어 보입니다. 참 안타깝지요.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자신의 자격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사실 나는 사도들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자로서, 사도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는 몸입니다."(1코린 15,10)

열렬한 바리사이로서 자청해 "새로운 길"을 박해하던 사울은 은총으로 바오로가 되었습니다. 사도는 이 사실을 가감없이 드러내면서 용서받은 죄인인 우리 모두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자 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 ... 나는 ...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있는 하느님의 은총이 한 것입니다."(1코린 15,10)

바오로가 은총에 순응해 예수님을 향해 죽음까지 불사하는 그의 사랑은 오늘 복음 속 여인처럼 진실되고 뜨겁습니다. 그가 많이 용서받은 사람이기에 그렇고, 그 사랑에 감사할수록 증거할 수밖에 없으니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무한히 사랑하시니 우리를 용서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사랑받고 용서받은 우리는 자연스레 사랑을 합니다. 우리의 사랑은 우리가 용서받았음을 경축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과 형제와 세상의 가난한 이들을 사랑하는 우리는 용서받은 은총의 주인공임을 온몸으로 증언합니다. 용서받은 이의 자유는 사랑하면서 누리는 기쁨과 보람을 배가시킵니다.

사랑하는 벗님! 사랑할 일이 우리 주변에 온 천지 가득 널려 있습니다. 사랑하기에도 부족한 우리 인생입니다. 요즘 같이 어려운 때는 더더욱 그렇지요. 복음 속 여인처럼 용기를 내어 사랑하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사랑은 우리가 받은 용서의 증거니까요.

오늘 저희 프란치스칸 가족들은 성 프란치스코가 받은 거룩한 상흔(오상)을 기억하는 축일을 지냅니다. 프란치스코는 당신의 독생성자를 우리 하잘것 없는 죄인들을 위해서 내어 놓으신 하느님의 그 사랑이 얼마나 큰지 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때 그 고통이 어떠하였는지 체험하게 해달라고 청하면서 피정에 들어갔고 오상의 선물을 받았답니다. 오늘 이 예수님의 거룩한 수난 상처가 벗님 여러분 모두에게 맘속 깊이 체험되는 은혜로운 선물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