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주일미사의 말씀은 주님을 아는 은총이 우리에게까지 닿게 된 까닭을 이야기합니다.
"어떤 밭 임자가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마태 21,33)
예수님께서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를 들려주기 시작하십니다. 이 비유의 배경은 오늘 제1독서인 이사야서의 대목을 그대로 언급하신 것입니다.
포도밭을 만드는 주인을 관상합니다. 그분이 얼마나 신이 나고 흥겨워하시는지요. 그분에게 포도밭은 단순한 소유지를 넘어, 애인이고 신부이며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해 당신 짝으로 삼으실 때의 기쁨과 환희가 우리 가슴까지 떨리게 하는 설렘으로 다가옵니다.
"그를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 버렸다."(마태 21,39)
그런데 포도밭 소작인들은 처음 밭을 경작할 수 있게 선택되었을 때의 초심을 잃어버렸습니다. 잃은 것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넘보지요. 합당한 소출을 바치지 않으면서 주인의 종들을 해치고 아들까지 죽여 버렸습니다.
"내 포도밭을 위해 내가 무엇을 더 해야 했더란 말이냐?(이사 5,4)
포도밭 주인이신 주님의 눈물 어린 탄식이 들립니다. 주인은 좋은 터를 잡아 온갖 시설을 다 짓고 지극 정성으로 포도밭을 마련했습니다. 사랑을 퍼부었으니 사랑 가득한 열매를 맺으리라 기대했지요. 누구의 돌봄도 받지 못한 시고 떫고 볼품 없는 야생 들포도가 열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겁니다. 정말로 무엇을 더 어떻게 해주어야 했을까요...
이 탄식은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마태 21,37) 하며 끝까지 소작인들을 믿은 순진하다 못해 바보스런 복음 속 주인의 탄식입니다. 모든 것을 마련해 주었던 주인이 당신 백성에게서 배척받는 적반하장의 극치일 겁니다.
"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은 내줄 것입니다."(마태 21,41)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은 이 비유가 자신들을 향하고 있다는 걸 아직 알아차리지 못하고 바른 소리를 합니다. 누가 들어도 불의한 상황이기 때문이니까요.
"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소작인들"
새로운 소작인들은 이 포도밭의 주인이 누구이며, 자기들은 그와 맺은 계약을 통해 이곳에서 일을 하고 있음을 인식하는 일꾼들입니다. 자기들 노동의 몫을 가져가더라도, 땅의 주인에게 돌아가는 합당한 소출을 바칠 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지요.
주님과 백성의 계약은 종이 한 장으로 남기 이전에 먼저 서로의 영혼과 마음에 새겨집니다. 둘 사이에는 부르심과 응답이 있었고, 그에 따른 선택과 책임이 있습니다. 이를 잊은 존재는 결국 포도밭을 빼앗길 것입니다. 사랑으로 시작된 계약은 사랑을 맺어야 하니까요.
"너희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마태 21,43)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단호하고 냉정한 선언입니다. 이대로라면 비유 속 소작인들처럼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한 이스라엘은 결국 하느님 나라를 빼앗길 터입니다. 그리고 이천 년 전 그들의 마음 속에 떠오른 적도 없었던 지구 반대편의 우리에게까지 하느님의 나라가 전해지게 되지요.
이스라엘의 거부로 인해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해 받은 우리 모두는 "제때에 소출을 내는 민족"으로 불리움 받았습니다. 이 은총에 우리의 공로는 없습니다. 다만 온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사랑이 작용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제시합니다. 필리피서의 짧은 대목 안에 거룩한 영적 단어들이 보석처럼 촘촘이 박혀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 기도, 간구, 하느님께 아룀"
"참되고 고귀하고 의롭고 정결하고 사랑스럽고 영예롭고 덕이 되고 칭송받는 것은 무엇이든지 마음에 간직하고, 그대로 실천함"
오늘 필리피서 대목 안에 나오는 말씀들을 모으니, 이야말로 우리가 바쳐야 하는 소출임을 알겠습니다. 하느님께 감사하며 기도하고 그분과 깊은 관계 안에 머무르는 것은 하느님께 바치는 직접적인 소출이지요. 온갖 덕과 선을 간직해 실천하는 것은 형제자매와 이웃을 이롭게 하는 선물이면서 동시에 결국은 이조차도 하느님께 돌아갈 소출입니다.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아 세웠으니, 가서 열매를 맺어라."(복음 환호송)
우리는 제때에 소출을 내는 소작인으로서, 주인의 부르심에 감사하며, 그에 맞갖은 열매를 맺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열매가 우리 자신들만 배불리고 풍요롭게 해서는 곤란합니다. 우리가 바치는 소출은 주님의 공정과 정의가 이루어지는데 쓰여야 합니다.(이사 5,7 참조) 포도밭을 짓고 꾸밀 때 주인이 가졌던 설렘과 기대, 사랑을 떠올린다면 그분을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지요. 여러분도 같은 마음이시리라 믿습니다.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마태 21,42)
우리에게까지 다가온 주님의 부르심과 기대를 경이롭게, 감사히 받아들입시다. 가장 먼저 선택하신 이들에게 모질게 배척받으신 그분 마음을 위로해 드리면서, 부족하지만 풍성히 열매 맺고 소출을 바치는 신실한 백성이 되도록 애를 씁시다. 우리 혼자 힘만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주님과 함께면 가능합니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필리 4,6.9)
오늘은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축일입니다. 프란치스코를 사부로 모시고 살아가는 저희 모든 프란치스칸들을 축하해 주시고 기도해 주십시오. 작음과 형제애 안에서 아름다운 열매를 제때에 맺는 하늘나라의 소작인들이 될 수 있도록...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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