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10월 30일 연중 제30주간 금요일

dariaofs 2020. 10. 30. 01:57

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 각자가 지닌 합당함의 척도에 대해 물으십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는데"(루카 14,1)

예수님께서 어느 안식일에 바리사이의 집에 계십니다. 때마침 수종병 환자가 그분 앞에 앉아 있지요. "그들이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하는 걸로 보아서는 예수님께 올가미를 씌우려고 데려다 놓은, 소위 세팅된 존재가 아닐까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합당하냐, 합당하지 않으냐?"(루카 14,3)

예수님께서 그들의 시선과 속셈을 알아차리시고 그들에게 합당함에 대해 물으십니다. 물론 그들의 답이 무엇이든 이미 당신이 하실 일을 마음에 정하셨지요.

예수님은 율법이 무어라 하는지 물으시기보다, 그저 합당함을 물으십니다. 문자로 새겨진 율법을 적용하기 전에, 마음과 영혼에 새겨진 사랑의 법, 생명의 법이 무어라 하는지 일깨우고 싶으신 듯합니다.

물론 율법 교사들과 바리사이들은 수종병이 하루이틀쯤 치료가 미뤄진다 해도 죽을 정도의 위급한 질병이 아니라는 점을 들어 합당함을 가늠할 것입니다. 환자가 좀 더 인내해도 목숨까지 잃을 염려가 없으니 안식일 법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여겼겠지요.

"예수님께서는 그의 손을 잡고 병을 고쳐서 돌려보내신 다음"(루카 14,4)

그런데 예수님 생각은 다르십니다. 당장 죽을 병이 아니어도 그 사람의 불편한 몸과 위축된 마음이 치유의 기준이십니다. 하느님 창조의 온전함이 훼손된 모든 상태에서 "바로 끌어내"(루카 14,5)는 것이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바리사이나 율법 교사들은 수종병자가 며칠 더 인내해도 무방하리라고 합리적으로 생각했겠지만, 예수님은 인내하지 않으십니다. 또 그에게도 인내를 강요하지 않으시지요. 그 대가가 불보듯 뻔해도 그들 면전에서 환자의 손을 잡고 치유를 감행하시고는, 먼저 그를 돌려보내십니다.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필리피 신자들에게 바라는 바를 기도 안에 담습니다.

"여러분이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필리 1,7)

사도는 필리피 신자들에게 진한 애정을 표현합니다. 그들이 복음을 전하는 일, 은총에 "동참"(필리 1,5.7)하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사도는 그들이 자신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고 마치 연애 편지의 한 단락처럼 진솔하고 따사로이 고백합니다.

이는 마치 주님께서 우리에게 건네시는 사랑의 고백과 같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당신 심장 안에 간직하고 계십니다. 그만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그분의 관심사가 됩니다. 사랑하면 그렇습니다.

"내가 기도하는 것은, 여러분의 사랑이 지식과 온갖 이해로 더욱더 풍부해져서 무엇이 옳은지 분별할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필리 1,9)

사도가 그들에게 바라는 바는,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 더욱더 성장하여 하느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리는 이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 영적 여정에서 중요한 것이 식별, 곧 분별입니다.

바르게 분별하는 능력은 단지 머릿속 지식이나, 속없이 착하기만 한 성품으로 저절로 생겨나는 능력이 아니라, 지식과 지혜와 통찰의 영이신 성령께서 주시는 은총입니다. 그리고 그 출발은 사랑이어야 합니다. 사랑에서 시작된 분별력으로 무엇이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인지,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진정으로 헤아릴 수 있습니다.

"바로 끌어내지 않겠느냐?"

사랑은 어려움을 안고 지쳐 있는 이에게 인내를 요구하지 않고, 오히려 그 지난했던 막연함을 끊어내 줍니다. 지금이 무슨 날이고 여기가 어디든 개의치않고, 공감과 연민으로, 사랑이 원하는 일에 자신을 던지지요. 아픈 그가 이미 예수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오늘의 그 수종병자는 예수님께서 덥썩 잡아주신 따스한 손길로 영혼까지 말끔히 위로 받았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 속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이 생각하는 합당합의 기준이 "사랑"에서 출발했다면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겠지요. 우리의 사고와 판단이 차가운 이성과 규정과 계산기 속에 갇히지 않도록 사랑으로 분별하는 은총을 청합시다. 우리는 이미 주님의 마음속을 차지하였으니 그분 마음을 우리 마음으로 삼아 그분이 원하시는 바에 우리 마음을 실읍시다. 그것이 곧 주님께 "동참"하는 것이고 사랑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