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의 자리가 어디인지 물으십니다.
"윗자리에 앉지 마라."(루카 14,8)
안식일에 바리사이 지도자의 집에서 식사를 하시게 된 예수님께서 이르십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자리"는 참 민감한 요소지요. 집주인들은 손님을 맞이할 때 자리 배치에 고심을 하고, 손님들도 자기에게 적합한 자리를 찾느라 나름 신경을 쓰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좀 더 나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것이 육의 본능인가 봅니다. 자기가 배운 것보다 더 아는 것처럼, 가진 것보다 더 가진 것처럼, 본래 생긴 것보다 더 잘난 것처럼 보이려는 욕망이지요. 그저 잠시 좀 더 낫게 보이는 것으로 끝나면 허영과 위선 정도로 그치지만, 이를 고수하다 보면 결국 허세와 거짓으로 발전합니다.
"윗자리"는 인간의 이런 욕망들을 대변하는 단어 같습니다. 초대해 준 데 대한 감사와 주인공에게 전하는 축하로 충분한 자리에서 자기 위상과 영광을 고심하는 모습이 예수님께 참 안타깝게 비친 것 같지요. 사실 재산을 표시하는 숫자와 누리는 권력의 양으로 스스로 높다고 여겨도 진심으로 그를 높게 보아주는 시선이 없다면, 그 "윗자리"는 그저 자기 만족의 외딴 섬일 뿐인데 말입니다.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루카 14,11)
자기가 스스로 분투하여 사회적 지위와 위상을 쟁취한 것으로 착각할 수 있지만, 실상 사람을 높이거나 낮출 수 있는 분은 하느님뿐이십니다. 그 자리 역시 어떠한 이유로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자리일 뿐이지요. 주어진 만큼 하느님과 세상에 갚아야 할 빚을 지게 되는 것이 이치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끝자리 신세여도 스스로 자존감이 충만하고 타인의 마음 한켠에서 선한 영향력으로 자리하고 있다면, 위아래 상관없이 귀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더 이상 공간적 자리 개념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겉꾸밈도 가면도 허세도 필요 없지요. 이런 이는 이미 하느님께서 들어높이신 존재입니다.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자신의 거취에 대한 바람을 진솔하게 드러냅니다.
"나의 바람은 이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편이 훨씬 낫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 육신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 여러분에게는 더 필요합니다."(필리 1,23-24)
사도는 그리스도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 때문에 당장이라도 죽음으로 건너가고 싶어합니다. 그것이 그에게 가장 이득인 셈이지요. 하지만 신생 교회들이 겪고 있는 성장통을 생각하면 아직은 지상 여정을 지속해야 한다고 여깁니다. 이 또한 그에게 부여된, 보람된 소명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삶과 죽음에 대해 자유로운 그에게는 윗자리, 끝자리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상이든 천국이든, 상석이든 말석이든 하느님께 영광이 되고 교회에 유익이 된다면 그는 어디에 있든 초연합니다. 이것이 죽음이라는 가장 끝자리의 두려움을 넘어선 이에게서 우러나는 진정한 자유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영원한 천상 혼인잔치를 희구하는 이는 세상이 규정해 놓은 윗자리, 끝자리를 고민하지 않습니다. 더 나아보이는 자리에 거짓으로라도 발끝을 걸치고 싶어 기웃거리지도 않지요. 육신은 여전히 지상에 묶여 있지만, 이미 그의 영혼이 주님에 가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세속의 허영과 자리 다툼이 그의 영혼을 흔들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벗님! 자신을 낮추어 종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에게 더 이상 외적 자리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영성생활의 관건은 '우리 영혼이 어디에 머물러 있으며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에 달려 있지요. 우리가 주님 곁으로 가까이 갈수록 더,더,더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분이 거기 계시니까요.
우리는 가장 초라하고 가난한 바로 거기서 주님을 뵈올 것입니다. 그러니 그 자리가 천상의 주인이신 분의 옥좌가 아닐 수 없겠지요. 거기서 그분과 하나된 우리는 자연히 높아집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주님께서 계신 자리를 찾아 나아갑시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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