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을 떠난 모든 이를 기억하며 그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오늘, 미사의 말씀에서는 모두의 행복을 바라시는 주님의 마음이 드러납니다.
"행복하여라."(마태 5,3.4.5.6.7.7.8.10)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여러 차례 외치십니다. 행복의 대상과 사안마다 반복해 덧붙이시면서, 마치 듣는 이들의 귀로는 행복의 권리를 일깨우시고, 심장으로는 행복의 소명을 각인시키시려는 듯합니다.
행복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우리 모두의 권리이고 소명입니다. 다들 행복하라고 주님께서 창조해 당신 정원에 심어 주신 것이니까요.
그런데 주님께서 건네시는 참 행복은 감각적이고 세속적인 쾌락이나 감정, 기분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돈과 권력이 많으면 으쓱하고 편리할 수는 있지만 정신과 마음과 영혼의 근원부터 뿌듯이 차오르는 참 행복은 못 되지요. 외모나 인맥은 잠시 만족을 보장하는 듯하지만 인간 실존을 깨닫는 은총의 순간이 오면 그저 허무히 스러져버릴 신기루였음을 알게 됩니다.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는, 거짓 행복의 그림자 너머로 참 행복을 직관하고 추구하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제1독서에서는 욥의 고통스런 절규가 울려퍼집니다.
"나는 하느님을 보리라. ...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그분을 보리라."(욥 19,26)
욥에게 닥친 고통의 원인을 그에게서 찾아내려, 불쌍한 욥을 다그치며 헤집어대는 친구들 앞에서 욥은 몸과 마음이 지쳐갑니다. 욥이 영화를 누릴 때 가까웠던 친구들은 지금 또다른 심판자로 돌변해 있습니다. 악의가 있어서라기보다 생각이 짧고 우매해서, 아직 하느님을 몰라서일 것입니다. 이에 욥은 하느님께 심판을 요청합니다.
욥은 스스로 아무리 자신을 성찰하고 샅샅이 살펴도 이 고통의 단초를 제공할 만한 죄악을 찾을 수 없으니, 이제는 하느님을 뵙고 여쭈려 합니다. 어리석음으로 하느님 뜻을 가리는 다른 이들이 아니라, 바로 그분을 만나겠다는 의지입니다. 억울하고 서러워도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신뢰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지금 우리가 어떤 상태인지 밝힙니다.
"이제 그분의 피로 의롭게 된 우리"(로마 5,9)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로마 5,10)
그리스도의 희생제사로 속량된 우리는 이제 하느님과 화해한 의로운 존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으로 이루신 화해이고, 율법을 철저히 지킨 공로가 아니라 믿음에서 오는 의로움이니 우리는 제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이렇듯 구원은 먼 미래의 가능성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누리는 현재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희망하고, 희망함으로 앞당겨 소유하고 누리는 은총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는 지금 여기에서 행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벗님! 삶 여기저기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복병들로 지금의 삶이 쓰라리고 고통스럽다면 욥처럼 하느님을 뵈리라는 희망으로 견뎌봅시다. 그분은 반드시 만나 주십니다. 겨우 요것밖에 안 된다고 스스로에게 실망스럽다면 자신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 존재임을 기억합시다. 행복이 내 것 아닌, 그저 먼 미래의 남의 일로 여겨져 서글프다면 "행복하여라." 하고 외치시는 예수님 목소리에 머무릅시다.
행복은 지금 여기서 영원한 천상 혼인잔치로 이어질 일상이 되어야 합니다. 아프고 가난해도, 완전무결하지 않아도, 삶에 찌든 실수투성이 죄인이어도 행복은 우리가 비키지 않는 한 결코 우리를 비켜가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피조물에게 내리신 지상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벗님! 이 세상에서부터 이제와 영원히 행복을 누리는 성인성녀들께 전구를 청하며, 행복을 위해 단련의 시간을 보내는 연옥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는 오늘 되시길 바랍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내적 행복의 한 조각을 기도가 간절히 필요한 영혼들과 나눌 수 있으니 얼마나 복된지요! 여러분 모두 행복하십니다! 저도 행복하답니다!
주님,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들에게 비추소서. 죽은 모든 이들의 영혼이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영원한 안식을 얻게 하소서.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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