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어떻게 그리스도를 따라야 하는지 알려 주십니다.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루카 14,26)
"제 십자가를 짊어지지 않으면"(루카 14,27)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루카 14,33)
첫째 조건은 자기 가족을 미워하라는 뜻이라기보다, 그 누구에 앞서, 자기 목숨보다도 주님을 더 사랑할 수 있는지 헤아려 보라는 초대입니다. 둘째 조건은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허락하신 십자가를 기꺼이 질 수 있는지 스스로를 살펴보라는 의미지요. 그리고 셋째 조건은 물질뿐 아니라 지식, 관계, 취향, 능력, 미래의 가능성까지 모두 주님을 위해서 비워낼 수 있는지 가늠해 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 속 인물들은 탑을 세우기 전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고, 또 다른 임금과 맞서 싸우기 전에 이길 승산이 있는지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았지요. 우리도 그리스도를 따라 나서기 전에 자신의 신앙과 사랑의 의지, 실천력을 신중히 따져 보아야 합니다.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필리피 신자들에게 구원의 길을 이야기합니다.
"하느님은 당신 호의에 따라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시어, 의지를 일으키시고 그것을 실천하게도 하시는 분이십니다."(필리 2,13)
우리 구원의 시작은 우리 안에서 저절로 일어난 사건이 아닙니다. 주님을 믿고 사랑하여 따르겠다는 의지를 우리 안에 일으키시고, 실천할 힘까지 주시는 분은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오늘 복음이 요구하는 조건들, 즉 주님을 다른 모든 피조물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마음과, 용감히 제 십자가를 감내할 힘과, 자기 소유를 다 떠날 수 있는 자유는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심어주시는 은총입니다. 실천할 힘 역시 그분의 선물이지요. 그러니 처음부터 지레 겁먹고 물러설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제 힘인 양 자만할 일도 아니지요. 그저 하느님께서 우리 내면에 일으키신 의지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몫입니다.
"생명의 말씀을 굳게 지니십시오."(필리 2,16)
"비뚤어지고 뒤틀린" 세상에서 주님을 바라보며 그분의 뜻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은 생명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 머물러 굳게 지키는 이는 '바로 그 말씀'에 순종해 하느님의 의지를 실행합니다. 비록 우리 자신은 하찮고 보잘것없더라도 우리 안에서 움직이며 활동하시는 그분 덕분에 이 세상에 뿌려진 구원의 씨앗은 매일 자라납니다.
모자라고 부족한 채로 주님을 따르는 우리 모두를 응원합니다. 만유 위에 주님을 더 사랑하려고, 버거운 제 십자가를 지려고, 세상 물질과 애착에서 자유로우려고, 자신을 잊고 힘껏 애쓰는 가운데 우리 존재가 주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포도주로 익어갑니다.
사랑하는 벗님! 주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으키시는 사랑의 의지를 잘 살피고 따르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우리를 통해 하느님의 의지가 완성되어 가는 것이니 기뻐합시다. "여러분도 기뻐하십시오. 나와 함께 기뻐하십시오."(필리 2,18) 이 기쁨이 벗님과 함께하시길 축원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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