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에는 주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 될 사람은 행복합니다."(루카 14,15)
예수님과 함께 식탁에 앉아 있던 어떤 사람이 기쁨에 차서 고백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앉아서 음식을 나누는데도 이렇게 행복한데,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이라면 얼마나 행복할까, 이렇게 생각하는 듯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들어 그에게 질문을 던지십니다.
비유의 줄거리는, 어떤 사람이 베푼 잔치에 먼저 초대되었던 이들이 참석을 거부하자, 결국 다른 이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하느님께 선택받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빗댄 비유지요.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참여함을 행복과 영광으로 여긴다는 그에게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네가 정말로, 네가 말한대로, 정말로, 정말로 하느님 나라에 참여하기를 바라느냐?" 하고 물으시는 것 같습니다. 입으로는 그렇게 고백하면서도 관심사와 방향은 다른 것을 추구하는 피상적 신앙인지, 잠시의 감동과 흥분으로 떠들다가 이내 사그라지는 떠버리 열성인지 스스로 깨닫도록 하시는 겁니다.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과 눈먼 이들과 다리저는 이들을 이리로 데려오너라."(루카 14,21)
처음 초대된 이들이 거부한 자리에 다른 이들이 불리웁니다. 겉모습와 능력을 중시하는 세상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채 한없이 낮추어진 이들입니다.
"아직도 자리가 남았습니다."(루카 14,22)
이 말씀 안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나라로 우리 모두를 데려가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당신의 죽음을 걸고 목숨을 바쳐 그렇게 하시지요. 그분께는 여전히 빈 자리가 많이 남아 보입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 하느님 나라 안에 우글대며 잔칫상을 채우고 기뻐 떠드는 우리 모습이 그분의 눈에 선하신 겁니다. 아직도 우리에 대한 그분의 허기와 그리움은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루카 14,23)
우리의 참여를 갈망하는 정도는 하느님 아버지도 예수님 못지 않으십니다. 아버지 역시 "어떻게 해서라도" 우리가 당신 나라에서 한 식탁을 받아 누리기를 바라십니다. 하지만 강요는 않으시지요. 완력으로라도 억지로 당신 뜻을 이루는 분이셨다면 처음 초대받은 이들에게 그리 간단한 이유들로 등돌림 당하지 않으셨을 겁니다. 바로 이것이 사람을 향한 주님의 구애가 자주 실패처럼 보이는 이유입니다.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예수님의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필리 2,7)
그리스도의 겸손은 스스로를 낮추어 아버지께 순종하는 이가 되심으로 드러납니다. 또 그분의 사랑은 종의 모습을 취하셔서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심으로 드러나지요.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겸손과 사랑으로 아버지와 우리 사이의 탁월한 중재자가 되십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필리 2,3)
바로 그 마음! 겸손의 마음, 사랑의 마음이고, "아직 자리가 있으니 들어오렴" 하는 환대의 마음입니다. "괜찮으니까 주저하지 말고 이리 들어오라"고 손을 내미는 자비의 마음이지요.
주님의 집은 가득 차야 합니다. 주인이신 아버지께서 그걸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도, 주님의 마음에도, 하느님 나라에도 우리를 위한 자리가 남아 있습니다. 억지로 끌고가지는 않으시지만, 간절히 참으로 간절히 우리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예수님께 하느님 나라 식탁의 행복을 고백했던 복음 속 어떤 사람의 자리로 돌아가 봅시다. 그는 정말로, 인사치레나 허세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을 갈망하는 이였을까요? 비유 속 첫 손님들처럼 주님의 초대를 밭(재산)이나 겨릿소(일)나 장가(육적 사랑)보다 헐한 가치로 넘겨버리지는 않을 사람이었을까요? 그 대답은 우리 각자 안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벗님! 주님께 사랑의 초대를 받고도 번번이 다른 곳에 한눈을 파는 우리에게 오늘도 예수님은 말씀을 통해 속삭이십니다. "여기 내 마음 안에 아직 자리가 많아 남아 있단다. 어서 들어와 네 자리를 차지하여라. 내 마음을 자치하여라!" 우리 모두, 힘껏, 주님 안에 마련된 자기 자리로 달아듭시다. 거기서 사랑에 취해 머무릅시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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