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에는 기쁨이 가득합니다.
"기뻐하여라. 거듭 말하니,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여라. 주님이 가까이 오셨다."(입당송)
미사는 초입부터 우리를 기쁨으로 초대합니다. 주님을 기다리면서 지쳐가는 우리에게, 주님께서 멀리 계시지 않으니 힘내라고, 마치 곁에 계시는 듯 앞당겨 기뻐해도 좋다고 등을 토닥이며 미사 안으로 안내하지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요한 1,20)
복음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전하며 백성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세례자 요한을 등장시킵니다. 그가 누구인지 의구심을 품는 이들에게 요한은 자신이 "누구"가 아닌지 명백히 밝히면서, 동시에 자신이 누구라고, 즉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요한 1,23)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아닌 것에 대해서도 인정하고 수긍하는 이는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입니다. 이런 이는 자기가 아닌 커 보이는 모습을 탐하지 않고, 작아 보이는 자기 모습에 실망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아는 사람은 크고 작음, 중요도, 지명도에 연연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자신을 알고 인정하고 사랑하며, 무엇보다 감사합니다.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요한 1,26)
사람들은 자기들 눈 앞에 있는 요한이 메시아가 아니고, 자기들 틈에 있지만 자기들이 모르는 그 누군가가 바로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리스도"라는 사실에 당황합니다. 모른다는 것은 어둠이고 한계입니다. 하지만 모름은 미지의 세계를 향한 열림일 수 있습니다. 모든 가능성을 열고 존재하는 모두와, 다가오는 모두를 환대하는 이유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니다." 그리고 "모른다."는 주님 앞에 선 인간의 진실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아닌 타자이시고, 인간이 죽었다 깨어도 다 알 수 없는 분이시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아님과 모름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아니고 모르기 때문에 겸허해야 하지요.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메시아의 사명과 기쁨을 노래합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이사 61,1-2)
주님께서 보내신 이의 첫째 소명은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입니다. 그것도 가난한 사람에게! 가난은 물질적 가난만이 아니라, 정신적, 심리적, 영적, 관계적 가난도 포함합니다. 부귀영화를 누리며 산해진미로 배를 채운들 결핍이 없을 수 없지요. 누구도 가난에서 완벽히 예외일 수 없습니다.
그러니 기쁜 소식은 모두를 위한 선물입니다. 우리 존재의 근원이시며 만물의 주인이신 분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기쁜 소식, 바로 그분께서 가까이 오셨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그분은 단죄가 아니라 사랑으로 심판하는 분이시고 우리 모두의 한계를 지고 가신다는 기쁜 소식이지요.
제2독서에서는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뜻이 명백히 드러납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16-18)
기쁨과 기도와 감사가 바로 하느님의 뜻입니다. 그것도 "언제나! 끊임없이! 모든 일에!" 하느님은 우리가 그렇게 살기를 바라셔서 원래부터 그렇게 지으셨습니다.
삶이 버거워 "기쁨"을 미루고, 아직 죄가 많고 준비가 안 되어 "기도"를 미루고, 아직 욕망이 다 채워지지 않아 "감사"를 미뤄 온 것은 우리였지요. 하지만 모든 조건이 채워지길 기다린다면, 평생 기쁠 수 없고 기도하지 못하며 감사할 줄 모르는 가련한 인생이 되고 말 것입니다.
자신이 받은 은총과 한계를 바르게 인식하는 이는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고유하고 특별한 선물을 잘 압니다. 그래서 아닌 모습,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담담하게 "아니다." 할 수 있고, 가진 것에 대해 기쁘게 감사할 수 있지요. 주님 앞에서 기쁘고 감사하며 기도하는 영혼은 진정 자유로운 존재입니다. 이 기다림의 시기에 우리가 만나는 세례자 요한처럼 말이지요.
요즘 우리 참 어렵습니다. 매일 늘어나는 코로나19 확진자 숫자와 어두운 소식들에, 각자 직접 겪고 있을 고통까지 더해지니 더더욱... 이런 사회적 세계적 혼돈 상태와 기쁨은 마치 극과 극의 이물질처럼 느껴지기도 할 텐데요.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럴수록 기쁨을 선택하고 선포하며 전파하는 존재여야 합니다. 기쁨은 감정이 아니라 선택이기 때문이며, 그것이 제2의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불리운 우리 모두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시기지만 기쁠 일은 없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다 아시고 실천하는 일들일 겁니다. 문득 떠오른 나눔의 아이디어에 지인이 함께하겠다고 동참할 때, 축 처진 어깨를 한 채 지나가는 누군가를 위해 기도할 때, 이 고립의 시간이 더 힘에 겨울 누군가를 위해 전화를 걸고 작은 정성을 보낼 때, 소박한 나눔이지만 누군가에게 위로와 격려가 되리라 생각하니 가슴이 뛰지요?
이것이 교회가 대림 제3주일을 자선 주일로 보내는 이유일 겁니다. 자발적 나눔에는 늘 기쁨과 희열이 축복으로 얹어진다는 걸 여러분은 이미 체험으로 아실 것이니까요.
사랑하는 벗님! 혹 여건이 더 나빠져서 공동체로 모여 주님을 찬미할 수 없게 된다면,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은수자가 되어 주님께 깊이 몰두하고 사랑 안에 머무를 수 있습니다. 주님과 단 둘이 사랑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며 기도하는 은총의 시간을 누릴 수 있으니 너무 아파하지 맙시다. 주님 마음 안에 깊이 잠겨 숨은 기도로 주님께 찬미와 영광을 올리는 오늘 되시길 축원합니다. 말씀과 기도 안에 우리 모두는 하나로 엮여 있으니, 힘 내십시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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