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12월 11일 대림 제2주간 금요일

dariaofs 2020. 12. 11. 01:56

오늘 미사의 말씀에는 주님의 안타까움이 가득 배어있습니다.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마태 11,16)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일을 사사건건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당시 사람들을 장터 아이들에 비유하십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무조건 호응하지 않는 이들이지요. 그들은 혼인잔치 놀이를 하자고 해도 춤 추지 않고, 장례놀이를 하자고 해도 울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이념과 이득이 진리의 자리를 꿰차고 있기 때문에 다른 것을 무조건 거부하고 반대합니다.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마태 11,18)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극기와 고행의 삶을 살면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였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삶은 하느님께 집중하기 위해 세상 권력과 물질, 자기 안위에 매이지 않고, 보다 철저히 자신을 닦는 선지자나 예언자다운 모습의 전형이었음에도, 당시 종교 기득권자들은 오히려 하느님의 적대 세력인 마귀의 힘으로 매도합니다.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마태 11,19)

이번에는 예수님께 쏟아지는 악평입니다. 극기를 행하는 요한과 달리, 사람들 틈에 들어가 그들과 먹고 마시며 어울리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분별 없고 무절제한 한량 정도로 보이나 봅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이 생각하는 율법의 경계를 넘나드시는 모습에 그분을 위험 인물로 간주한 듯하지요.

세상에 오신 구원자를 알아보지 못하는 이들, 알아보길 거부하는 이들은 메시아가 어떤 모습으로 오더라도 사절입니다. 어쩌면 메시아는 이미 그들 관념 안에 단단히 자리를 잡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 모든 걸 누리고 있는 그들에게 자신의 우상 외에는 다른 어떤 구원자도 필요하지 않으니까요.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마태 11,19);

하느님께서 파견하신 이들의 옳음은 열매로 드러납니다. 구약의 무수한 예언자들이나 세례자 요한, 예수님도 마찬가지지요. 지혜이신 예수님은 사람을 살리고 고치고 위로하고 힘을 주십니다. 하느님 모상성을 회복시키는 자애의 손길을 금하는 법은 없지요. 아무리 자의로 해석한 율법을 들이대도 그럴 수는 없습니다.

지혜이신 분이 이루신 일은 지혜 자체를 거역하지 않습니다. 그 자체가 지혜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누구도 예수님의 사랑의 의지와 그분의 업적을 분리할 수 없습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 적용하는 모든 혐의는 오히려 집단이기주의와 차별, 분열을 조장하기에, 그 자체로 악의 단면임을 드러냅니다.

제1독서에서는 주님의 바람이 섞인 한탄이 들립니다.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너의 평화가 강물처럼, 너의 의로움이 바다 물결처럼 넘실거렸을 것을."(이사 48,18)

계명을 잘 지키고 그 보상을 누리는 이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닌 듯 들립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참하게 패망과 유배와 억압이라는 대가를 치르고 있는 당신 백성을 안타깝게 여기시는 탄식이 섞여서 들려오네요.

그런데 이 탄식 안에도 희망이 숨어 있습니다. 주님께서주신 계명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입니다. 강물 같은 평화, 바다 물결 같은 의로움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누리를 자유와 해방의 상태입니다.

평화는 선을 그어 밀어내거나 소외시키지 않습니다. 차별하거나 이용하지 않지요. 흑백논리로 편을 가르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말씀 안에서 한없이 너른 평화의 상태를 살아가길 바라십니다. 장터 아이들과 달리, 웃는 이와 함께 웃어 주고, 우는 이와 함께 울어 주라고 하십니다. 바로 당신처럼요.

사랑하는 벗님! 온갖 오해와 편견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바쳐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알아보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내 방식과 다르게 선택하며 살아가는 이에게서도 선하고 진실되고 아름다운 하느님의 모상을 발견할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을 넓혀 주십사 청합시다. 우리 서로가 "진리의 말씀 안에서" 서로에게 호응하고 수용할 때, 진정한 평화가 온 누리를 가득 채울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