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12월 8일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dariaofs 2020. 12. 8. 05:59

오늘 미사의 말씀에서는 하느님의 권능이 크게 드러납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내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루카 1,30-31)

하느님께서 가브리엘 천사를 나자렛 처녀 마리아에게 보내시어 당신의 계획을 알려 주십니다. 천사의 발현도 갑작스럽고 놀라운 일인데, 처녀의 잉태는 더욱 충격적인 소식이 되겠지요.

마리아처럼 경건하게 율법과 관습을 익혀온 이스라엘의 처녀라면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이사 7,14)라는 예언서의 말씀을 익히 들어왔겠지만, 누구도 이런 상황에서 발현과 전언을 익숙하고 자연스레 수용하기란 쉽지 않을 겁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루카 1,34)

하느님께서 예언서에서 이야기한 인물로 그 자신을 선택하셨다는 점이 마리아가 가진 첫째 의아함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어서 드는 두 번째 의아함은 아마도 아기를 잉태하여 출산에 이르는 생물학적인 절차에 관한 부분이었지요.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 1,37)

그렇습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모든 인간이 원죄의 굴레를 져야 했지만, 신이고 인간이신 성자 예수님의 거처를 위해 마리아를 거룩하고 순결한 존재로 남도록 하느님께서 미리 예비하셨으니까요. 오늘 제1독서에서 우리를 안타깝게 만든 원조들의 범죄는 마리아를 오염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마리아의 존재에 희망을 둡니다.

그리고 예수님 탄생 이야기에서 보듯 잉태와 출산의 생물학적 원리 역시 하느님께는 아무런 제약이 되지 못하지요. 하느님은 인간의 논리보다 크시기 때문입니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께서 마리아에게 베푸셨던 은총이 우리 모두에게 가능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에페 1,4)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준비도 이러하셨습니다. 우리를 항한 그분의 꿈과 기대도 이토록 진실되고 아름다웠습니다. 비록 지금은 세상살이에 휘둘려 이 고귀한 섭리의 자취보다 원죄의 상처가 짙게 드리워져 있을지도 모르지만, 처음 우리에게 품으셨던 그분의 선택, 은총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에페 1,5)

하느님의 "좋으신 뜻"은 불가능을 모릅니다. 당사자인 우리의 죄와 나약함과 불결함에도 그분의 "좋으신 뜻"은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애초에 우리 됨됨이를 보고 뜻을 품으신 뜻이 아니라 "사랑으로"(에페 1,4) 시작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마리아가 하느님에게서 받은 선택과 총애가 오롯이 하느님의 뜻이었듯이, 우리에게까지 도달한 부르심과 은총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부족함을 잊고 주님께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이제 마리아의 응답이 우리를 재촉합니다. 마리아를 통해 얻은 희망이, 마리아의 겸손과 용기, 순종의 은혜까지도 쟁취하라고 우리를 격려합니다. 겸손과 순종으로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시고, 그로써 또한 모든 사람의 어머니가 되신 마리아는 우리의 거울이고 모범이십니다.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우리를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으로 창조하신 주님께서 매순간 당신의 구원 사업에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꼭 거창하지 않더라도 소박하고 잔잔한 일상 안에서 부르시지요. 그 부르심에 대해 각자가 느끼는 무게와 크기는 다 다를 겁니다. 주님께서 어떤 상황을 통해, 누구를 통해 말을 걸어오시더라도 마리아처럼 단순하게, 겸손히, 용기 있게 순종하고 의탁하는 나날 되시길 축원합니다.

코로나19 상황이 악화되어 모두를 어려움을 겪고 계시겠지만, 내적 평화와 기쁨으로 충만한 대축일 되시길 기도합니다.

한국 교회의 수호자이신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여,
저희와 교회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