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12월 6일 대림 제2주일

dariaofs 2020. 12. 6. 06:00

오늘 미사의 말씀에는 예수님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으시지만, 분명 초점은 그분께 선명히 맞춰져 있습니다.

"기록된 대로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 나타나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마르 1,3-4)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이 오시기에 앞서 그분의 길을 준비할 "사자"(마르 1,2)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세례자 요한이 바로 구약에 예언된 그 사람이지요.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마르 1,7)

백성들의 관심과 기대가 자신에게 쏠리자 세례자 요한은, 자기는 그저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마르 1,3)일 뿐이고 주님의 길을 마련하는 존재임을 밝힙니다. 이 군더더기 없는 진실은 그의 담백한 겸손에서 나옵니다. 요한의 존재 목적, 곧 소명은 주님보다 앞서 와서 백성들이 그분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이었지요.

제1독서에서 이사야는 주님께서 반드시 오실 것이라고 백성을 위로합니다.

"보라, 주 하느님께서 권능을 떨치며 오신다."(이사 40,10)

예나 지금이나 세상은 힘과 권세, 재물과 지식이 소수 계층에 비정상적으로 쏠려 질서와 균형을 무너져 버렸습니다.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헤어나올 수 없는 가난, 빠져나올 수 없는 억압, 벗어버리기 힘든 차별에 다수의 민중이 끝간데를 모른 채 추락하고, 사람다움을 누릴 권리조차 잊은 채 체념과 비관을 강요받으며 살아갑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기다리는 메시아 시대는 공정하고 정의로우신 평화의 임금님께서 모든 권한과 능력을 가지고 통치하는 나라입니다. 다수가 일부 기득권층의 특권을 위해 존재하는 나라가 아니라, 보통 사람은 물론 작고 약한 이들까지도 사람다움을 회복하고 존중받는 나라지요.

예수님께서도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구하라고 특별히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셨지요. 하느님의 나라는 인간 실존과 동떨어진 저 하늘 끝의 이상이 아니라 이 지상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하는 현실입니다. 아버지와 우리가 동시에 바라는 희망이지요.

제2독서에서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의 자세를 이야기합니다.

"의로움이 깃든 새 하늘과 새 땅"(2베드 3,13)

박해 시대를 살아가는 초대 교회 신자들에게 당시의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았습니다. 수난과 죽음의 위험을 곁에 두고 걸으며 그들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모든 것을 바로잡아 주시리라고 믿으며 견디어 냈지요. 새 하늘과 새 땅은 우리의 믿음이 하느님의 정의로 보상을 받는, 사랑과 자비가 충만한 세상입니다.

"티 없고 흠 없는 사람으로 평화로이 그분 앞에 나설 수 있도록 애쓰십시오."(2베드 3,14)

사도는 티도 흠도 없는 사람이 되도록 애쓰라고 권고합니다. 창조 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심어 주신 당신이 모상이 충만히 피어나는 상태가 곧 존재적 평화일 겁니다. 죄와 이기심은 이 평화를 훼손하지요. "거룩하고 신심 깊은 생활"(2베드 3,11)은 우리가 이 기다림의 시간을 잘 견디고 평화로이 그분 앞에 나설 수 있도록 준비시켜 줄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목자처럼 ... 먹이시고 ... 품에 안으시며 ... 조심스럽게 이끄신다."(이사 40,11)

이사야 예언서의 저자는 권능을 떨치며 오시는 주님을 이렇듯 착한 목자의 표상으로 제시합니다. 어쩌면 대림 제 2주일의 모든 독서 내용이 바로 이 말씀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듯 싶습니다.

온 세상 모든 만물이 준비해서 맞이해야 하는 분, 세례자 요한이 자기보다 크시다고 이야기한 분, 그가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다고 할 만큼 높으신 분, 지난한 세월을 참고 기다리며 티나 흠이 없도록 애써가며 준비해 맞이해야 하는 분, 그분이 바로 길 잃은 양 한 마리 때문에 노심초사하시며 찾아 헤메는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목자의 모습을 관상합니다. 양들을 바라보는 애틋한 눈길, 일일이 거둬먹이는 자상한 손길, 허약하고 병든 양을 안고 위로하는 따뜻한 품, 각자의 처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조심스런 관계맺음이 바로 우리 주님의 모습입니다.

우리에게 약속된 새 하늘과 새 땅은 힘과 재물과 권력이 몰아치는 세상이 아니라, 모든 이가 각자의 하느님 모상성을 활짝 꽃피우며 평화의 상태로 공존하는 하느님 나라입니다. 오시는 주님은 큰 소리나 강제 없이 양들을 이끄시는 온유하고 양선한 스승이고 길벗이시지요. 그런 분을 우리가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의 주님이시지요.

대림 제2주일의 말씀을 통해 보다 선명해진 주님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우리와 온 세상을 구원해 주실 구세주 예수님은 우리의 착한 마음 안에 들어오시려 채비를 차리고 계신 착한 목자십니다.
"거룩하고 신심 깊은 생활"로 부드럽고 온기 넘치는 구유를 마음 안에 마련하는 오늘 되시길 축원합니다. 성탄이 어느새 한 걸음 더 성큼 다가왔습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