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12월 9일 대림 제2주간 수요일

dariaofs 2020. 12. 9. 06:04

오늘 미사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고 싶으신 것이 무엇인지 알려 주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주님은 우리에게 안식을 주는 분이십니다. 그분이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시지요. 그분은 세상 안에서 이리저리 치이며 허덕이는 자녀들을 외면하실 수 없으십니다. 생로병사의 파도, 스스로의 죄악과 나약함에 넘어지고 무너지는 우리에 대해 한없이 연민하시지요. 그분이 우리에게 "안식"을 주고 싶어하십니다. 공부나 격무에 지친 자녀를 편히 쉬게 해주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사실 "안식"은 하느님께서 태초에 세상을 창조하실 때 모든 피조물에게 허락하고 명하신 축복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안식", 곧 쉼을 두려워합니다. 자는 시간도 아깝다며 불철주야 달리는 이들을 칭찬하고 쉼 없이 몰두해야 성공한다고 부추깁니다.

이는 자본주의와 자유시장 경제체제 안에서 거대 자본이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개개인의 사고에 심어놓은 함정일지도 모릅니다. 그 영향 때문인지 사람들은 안식을 불안해합니다. 죽으면 어차피 안식이니, 살아있는 동안 죽어라 일해 성공하겠다고 이를 악물지요. 거기서 병도 생기고 고통도 옵니다. 그 대가로 숫자와 물질은 쌓여가지만 마음은 공허하고 각박해질 뿐입니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30)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께서, 당신이 지워주시는 멍에와 짐은 편하고 가볍다고 밝히십니다. 성공과 맞바꾼 세상의 쓴 잔과는 사뭇 다른 듯하지요.

세상은 눈에 보이는 성과를 생산적이라고 칭합니다. 그렇다면 안식은 소모적인 낭비일 터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안식을 마치 무기력하고 무계획적인 시간 낭비처럼 여깁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기도가 아닐까 합니다.

우리가 주님께 몰두해 그분과 친교를 나누는 것이 기도입니다. 온전한 안식의 시간이지요. 기도가 깊어질수록 그토록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주님과의 머무름에 쏟아붓게 됩니다. 그분 사랑 안에 머무르고 싶은 갈망이 더 커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거룩한 안식을 위해 생활의 어떤 부분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주님과의 사랑이 다른 즐거움보다 더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에 빠지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쓰는 시간이나 노력, 물질이 하나도 아깝지 않은 것처럼, 기도를 위해 쓰는 시간과 노력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는 거룩한 안식이고 또 거룩한 낭비입니다.

세상 걱정 근심에 매몰되어 늘 피곤하고 불안하고 우울한 이들에게 예수님께서 손을 내미십니다. 당신이 주시는 안식을 누리라고요. 남들에게 질세라 목숨 걸고 매달리는 그것들이 당장은 중요해 보여도 실은 생명을 갉아먹는 욕망의 하수인일 뿐임을 깨달으라고 하십니다. 좀 느려도, 좀 작아도, 좀 낮아도, 좀 덜 중요한 사람이어도 괜찮으니, 진정한 행복을 위해 잠시 멈추라고요. 그리고 "안식"의 축복을 누리라고요.

제1독서에서는 우리를 생기있게 하는 힘이 어디서 오는지 이야기합니다.

"나의 길은 주님께 숨겨져 있고, 나의 권리는 나의 하느님께서 못 보신 채 없어져 버린다."(이사 40,27)

하느라고 했는데 바라는 성과는 보이지 않고, 예고 없이 닥쳐오는 실존적 고통들로 지쳐갈 때, 인간은 이처럼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한탄합니다. 체념과 회의가 짙게 깔려 있지요. 나름 열심히 했어도 행복하지 않은 건 주님이 나를 외면하고 무관심하며, 소외시킨 탓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믿고 욕망에 더 채찍질을 할수록 안식은 물론 주님과도 점덤 더 멀어질 뿐입니다.

"주님께 바라는 이들은 새 힘을 얻고, 독수리처럼 날개를 치며 올라간다."(이사 40,31)

욕망에 바랄 것이 아니라 주님께 바라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기력을 북돋아 주시는 분이시니, 그런 주님께 바라는 것이 어차피 끝을 모르고 치닫는 욕망으로 점철된 세상에서 방전되지 않고 살아가는 지혜임을 일깨워 주십니다.

주님께 바라는 이는 그분 안에서 누리는 안식을 소중히 여깁니다. '그 시간과 그 에너지와 그 돈으로 다른 걸 했었더라면' 하고 다른 이들은 혀를 끌끌 찰지언정, 본인은 전혀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주님 안의 안식은 세상 것을 다 가져도 얻을 수 없는 충만한 평화이고, 온전한 의탁이 주는 위안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당신께 와서 안식을 누리라고 하시는 주님의 초대에 기꺼이 응답하는 오늘 되시길 축원합니다. 그분은 우리를 채찍질해서 더 크고 놀라운 성과를 얻게 하시려고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진정 하느님 모상으로 사람답게 사는 법을 알려 주러 오셨습니다. 주님께 바라는 이는 안식을 누릴 것입니다. 이 안식은 우리를 더 깊고 그윽하고 고귀한 사랑의 장막 안으로 데려갈 것입니다. 그러니 복잡한 것들을 좀 내려놓고 주님께 달아듭시다. 이 코로나 시대는 그렇게 하라는 주님의 강력한 초대일지도 모릅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