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가 예수님과 지속적으로 관계 맺고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 줍니다.
"당신은 누구요?"(요한 1,19)
유다인들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개를 촉구하며 세례를 베푸는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어 묻습니다. 아버지 즈카르야가 사제였고 어머니 엘리사벳도 아론의 후손인 까닭에 세례자 요한은 계보적으로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기는 합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요한 1,20)
요한이 서슴지 않고 고백합니다. 그는 찰나의 순간이라도 타인의 정체성으로 자신을 치장할 마음이 없습니다. 오히려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 그의 소명이니까요.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요한 1,26)
요한은 백성을 준비시키려고 자기가 베푸는 물의 세례와, 주님께서 베푸실 "성령의 세례"(요한 1,33 참조)를 구분합니다. 백성 가운데로 오셨으나 아직은 백성이 알아보지 못한 분, 그분이 바로 그들이 기다리는 그리스도임을 알려 줍니다.
"모르는 분"
예수님은 백성의 눈에 아직 베일에 싸여 계십니다. 그분이 나타나셔서 아버지의 일을 하신다 해도, 정치적 해방과 경제적 풍요를 구원이라 여기고 기대하는 이들 눈에는 영영 감춰져 계실 것입니다. 슬프게도 인류에게 예수님은 여전히 "모르는 분"으로 남게 되실지도 모릅니다.
제1독서에서 요한 서간의 저자는 예수님을 직접 체험하지 못한 신도들이 늘어가면서 그들이 어떻게 그분과의 관계를 이어가야 하는지 조언합니다.
"여러분은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1요한 2,24)
요한 서간은 예수님과의 실제적 접촉이 매우 짧거나 거의 없었던 이들이 신도가 되어 세대를 거듭하는 시기(기원후 80-90년경)에 집필된 것으로 추정되지요. 아마도 예수님과의 직접적 추억보다, 사도나 그들의 제자들을 통해 전해진 말씀에 의지해 그리스도를 믿기로 전향한 이들이 대부분이었을 겁니다.
기존 유다교의 반박과 이단의 교설도 만만치 않았을 겁니다. 각자가 기억하는 부르심의 순간과 방식은 다 다르니, 박해 시대의 풍랑 속에서 때때로 불확실과 의심의 순간도 맞닥뜨렸을 테구요.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누군가를 믿고 사랑하는 일은 현상적 영역 밖의 일이라 그렇습니다. 그러니 주님과 사랑에 빠진 첫 순간을 기억하고, 그 뜨거웠던 첫 마음을 간직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겠지요.
"그러나 여러분은 기름부음을 받았고 지금도 그 상태를 보존하고 있으므로 ...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1요한 2,27)
우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의 물로 정화되고, 성령의 도유로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는 자녀가 된 것입니다. 기름부음을 통해 우리 안에 들어오신 성령의 불은,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물러 있는 한 결코 꺼지는 일이 없습니다.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이것이 우리가 곤곤하고 버거운 세상살이 파도 안에서 주님과의 관계를 이어가는 방법입니다. 매일 다가오시는 말씀에 머무르고, 자비 가득한 그분 마음에 머무르며, 우리를 부르신 그분 뜻에 머무르고, 우리와 일치하고 싶어하시는 그분 사랑에 머무르는 것이지요. 이 머무름이 주님과 우리의 관계를 나날이 더욱 친밀하고 두텁게 만들어 줍니다.
기름부음을 통해 우리 안에 거처하시는 성령께서 성부 하느님을 부르시고, 성자 예수님을 끌어당기십니다. 성삼위 하느님의 속성이 일치이기 때문이지요. 성령께 마음을 열고 말씀에 머물러 아버지의 심장 안에 자신을 감추는 이는 성삼위 하느님의 일치적 사랑에 함께하게 됩니다. 머무름이 죄스럽고 부족한 우리에게 일으키는 기적입니다.
이 머무름을 통해 주님은 "모르는 분"에서 차츰 "아는 분"이 되어가실 겁니다. 새해에는 주님께 머무르고 말씀에 머물러 그분과 더 깊이 사랑을 나누는 여정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우리가 좀 더 고결하고 선량한 그리스도인의 면모를 갖추어 갈수록 세상도 좀 더 나아지고 밝아질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인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강 론 말 씀 '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21년 1월 4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월요일 (0) | 2021.01.04 |
|---|---|
| 2021년 1월 3일 주님 공현 대축일 (0) | 2021.01.03 |
| 2021년 1월 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0) | 2021.01.01 |
| 2020년 12월 31일 성탄 팔일 축제 제7일 (0) | 2020.12.31 |
| 2020년 12월 30일 성탄 팔일 축제 제6일 (0) | 2020.12.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