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1년 1월 27일 연중 제3주간 수요일

dariaofs 2021. 1. 27. 06:22

오늘 미사의 말씀은 말씀과 우리 마음의 관계를 보여 주십니다.

"씨 뿌리는 사람은 실상 말씀을 뿌리는 것이다."(마르 4,14)

많은 군중이 모인 호숫가에서 예수님이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들려 주십니다. 그런데 이 비유의 숨은 뜻을 알아들은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아 보입니다. 제자들마저 따로 예수님께 비유의 뜻을 풀이해 달라고 청했을 정도니 군중은 더 말할나위도 없어 보이지요.

이 상황은 예수님께서 비유를 통해 뿌린 말씀의 씨가 아직 어느 땅에도 스며들지 못했음을 보여줍니다. 어쩌면 지금은 땅을 파서 그 씨를 일일이 심어 주는 수고가 필요한 전초 단계일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군중도 제자들도 아직 준비가 덜 된 까닭이지요.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과 그 밖의 여러가지 욕심이 들어가,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마르 4,19)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네 가지 땅의 유형에는 나름의 걸림돌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길바닥 같은 마음에 떨어진 씨앗은 당장 사탄이 앗아가 버리고, 돌밭 같은 마음에 떨어진 씨앗은 뜨거운 햇볕에 타버리지요. 가시덤불 밑에 떨어진 씨는 겨우 싹을 내지만 열매를 맺기 전에 가시덤불 때문에 숨이 막혀 버립니다.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 그리고 욕심은 가시덤불과 같을 겁니다. 노후와 미래가 보장된 신분이 아니라면, 살아남기 위해, 먹고 살기 위해, 성공하기 위해 저마다 치열하게 세상을 헤쳐나가는 길에서 피할 수 없는 그림자들입니다. 그리고 이 가시들이 마음의 욕망을 건드려 관심을 끌면, 말씀은 뒷전이 되고 세속이 점점 더 크게 내면에 또아리를 틀게 되지요.

신앙의 길에 들어선 많은 이들 중에 이쯤에서 멈추는 경우가 종종 있는 듯합니다. 말씀이 뭔지도 모르는 단계는 지났지만 세상 걱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보니, 말씀이 자신의 마음에 더 깊이 스며드는 것이 두려워 적당히 거리를 둡니다. 그 말씀이 자신을 바꾸어 아슬아슬 유지하고 있던 세상 맞춤형 가면이 일순간 벗겨질까봐, 그래서 세속적으로 뒷걸음질 칠까봐 두려운 게지요. 그래서 애써 가시덤불과 공생하는 방법을 찾고 싶어합니다. 하느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양다리'인 줄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요.

"그들은 말씀을 받아들여 ... 열매를 맺는다."(마르 4,20)

좋은 땅에서는 씨앗이 생명을 얻습니다. 말씀을 환대하고 받아들여 머무르며, 그 말씀이 자신을 변화시키도록 의탁하고 순종하는 이들은 좋은 땅과 같습니다. 말씀의 씨앗은 그 사람만 변화시키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가 맺은 열매를 통해 세상을 풍요롭게 합니다. 말씀은 좋은 땅에서 기적을 이룹니다.

제1독서에서는 완전한 예물이 되신 예수님 덕분에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었는지 이야기합니다.

"나는 그들의 마음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생각에 그 법을 새겨 주리라. ... 나는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의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리라."(히브 10,16-17)

하느님의 법이 마음과 생각에 새겨진 우리는 사실 이미 좋은 땅입니다. 예수님께서 "한 번의 예물로 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셨기"(히브 10,14)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용서된 곳에서는 더 이상 죄 때문에 바치는 예물이 필요 없습니다."
(히브 10,18) 예수님의 희생제사를 통해, 이를 믿음으로써 얻은 의로움을 통해 우리는 말씀이 생명을 틔울 수 있는 비옥하고도 좋은 땅이 되었습니다.

땅은 관심과 정성과 손길이 필요합니다. 우리 마음을 잘 가꾸어 말씀에 적합한 환경을 유지하는 것은 우리 몫이 되겠지요. '이 풍진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과 욕심에서 온전히 자유롭기는 쉽지 않지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덕분에 얻은 거룩한 지위를 기억하고 끊임없이 되돌아가려는 노력이 우리 마음과 영혼을 지켜줄 것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매일 말씀과 만나고 머물러, 나날이 비옥해져가는 좋은 땅인 벗님을 축복합니다. 오늘도 말씀과 함께 복된 하루 되시길 기원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