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1년 1월 30일 연중 제3주간 토요일

dariaofs 2021. 1. 30. 11:11

오늘 미사의 말씀은 믿음을 촉구하십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마르 4,38)

예수님과 제자들이 호수 한가운데에서 함께 배 안에 있을 때, 돌풍이 일어 물이 배 안까지 거의 가득 들어차는 위급한 상황이 닥칩니다. 제자들 중에 물일에 익숙한 뱃사람들도 끼어 있었지만, 다들 혼비백산 한 것 같습니다.

주무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관상합니다. 제자들이 외부에서 일어나는 돌풍과 파도 이상으로 내면과 영혼까지 출렁이며 뒤집어질 때, 예수님의 내면은 고요와 평화 그 자체십니다. 아무리 하느님의 아드님이시지만 인간 육신의 모든 조건을 지니셨기에 천재지변이 아무 위협도 되지 않을 수 없을 텐데 그러십니다.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마르 4,39)

제자들의 간청에 예수님께서 일어나 바람을 꾸짖으십니다. 그리고 이 한 말씀으로 방금 전까지 사납게 날뛰던 바람이 바로 복종하지요.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마르 4,40)

문제는 믿음이었습니다. 제자들 입장에서는 자기들을 뒤흔든 두려움과 혼돈이 거센 바람과 들이치는 물 등 외부적 상황 때문이라고 여겼겠지만, 예수님께서 보실 때는 사실 불신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어느 삶도 완벽히 무탈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견딜 수 있을 만큼의 크고 작은 진동과 돌풍 속에서 적당히 흔들리며 힘껏 중심을 잡고 나아가는 중이지요. 그러다 때때로 우리 존재와 그간 이뤄놓은 삶의 터전을 집어삼킬듯 범람하며 우리를 위협하는 고통을 맞닥뜨리기도 합니다.

아이러니 같지만, 믿음이 발휘되는 건 그런 순간입니다. 믿음은 평온하고 안정적이며 아쉬울 것 없는 삶에서가 아니라 추락과 침몰, 해체와 죽음의 돌풍 앞에서 증명되는 진실이니까요.

제1독서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신앙 선조들의 믿음을 반복해 강조합니다.

"믿음으로써"(히브 11,8.9.11.17)

아브라함은 "믿음으로써" 길을 떠났고, "믿음으로써" 영원한 도성을 기다리는 이방인으로 남았으며, "믿음으로써" 이사악을 바쳤습니다. 사라도 "믿음으로써" 이사악을 잉태하였지요.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히브 11,1)

믿음은 결과가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손에 쥐어지거나 쥐어지지 않거나 관계없이 존재 깊숙이 자리하는 확신입니다. 믿는 바대로 그 결과는 이미 완성이 됩니다. 믿음 자체가 보증이고 확증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믿음을 발휘해야 하는 순간은 오늘 범람과 침몰의 위기 앞에 허둥대는 제자들의 상황처럼, 그리 만만히 다가오지 않습니다. 주일미사 때 습관적으로 읊는 신앙고백문이 진짜 삶으로 옮겨질 때는 거센 현실의 파도 앞에서 나름의 포기와 결단과 선택이 따라야 하기 때문이지요.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순교의 증거까지 요구하지 않는다 해도, 믿음을 증거해야 하는 순간은 삶의 아주 작은 디테일에 속속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달갑지 않고 반갑지 않은 천재지변, 질병과 사고, 사람과 관계의 파도 앞에서 예수님처럼 고요히 침잠할 수 있는 힘이 곧 믿음입니다.

돌풍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예수님처럼 바람을 꾸짖어 멈추는 힘은 우리 영역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믿음은 가능합니다. 믿는다면, 외부의 돌풍이 아무리 나를 뒤흔들어도 고요히 주님 안에 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벗님! 각박한 세상, 녹록치 않은 삶을 지고 가면서 믿음을 부여잡고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를 응원하고 축복합니다. 복잡하고 버거운 세상 일을 잠시 내려놓고, 아버지에 대한 믿음으로 주무시는 예수님 곁에서 평안히 쉬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