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1년 2월 1일 연중 제4주간 월요일

dariaofs 2021. 2. 1. 05:48

오늘 미사의 말씀은 매우 극적인 구원의 현장을 보여 주십니다.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마르 5,8)

이방인 게라사인들의 지방에서 아주 거친 영에게 사로잡힌 사람이 예수님께 마주 오자 그분께서 명하십니다. "그는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곤"(마르 5,5) 하는, 아무도 접근할 수 없고 도와줄 수 없는 처참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에게 위해를 가할 뿐, 타인을 직접적으로 공격했다는 설명은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소리를 지르고 족쇄나 쇠사슬을 끊는 행위가 타인에게 공포를 조장하고 위협이 되기는 합니다만, 그 지방 사람들이 알아서 피하기만 하면 그런대로 함께 지낼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나 추측해 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저희 고장에서 떠나주십사고 청하기 시작하였다."(마르 5,17)

그 사람 안에 들어 있던 '군대'라는 더러운 영들이 예수님의 허락에 돼지 떼에게로 옮겨가자, 돼지들이 호수에 빠져 몰살됩니다. 고을 사람들이 얼떨결에 재산에 손실을 입은 것입니다. 어쩌면 그들 중에는 당장 생계가 곤란해진 이들도 있을 터이니 그들의 태도를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아마 지금 같으면 손해배상 문제로 골머리를 앓을 일이 벌어진 것이니까요.

고을 사람들의 반응은 우리를 성찰하게 합니다. 그들은 정상으로 돌아온 이를 보면서 함께 기뻐하고 축하하기보다, 오히려 그가 온전해진 것에 겁을 내지요. 그리고 그에게 구원을 베푸신 예수님께 떠나가 달라고 청합니다. 더러운 영에 들렸던 이가 고을에는 성가신 존재였을망정 자신들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친 일이 없기에 그의 존재는 용인되었으나, 재산에 손실을 끼친 예수님과는 함께할 수 없다고 느낀 것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하느님의 뜻이나 선행, 정의와는 별개로 내 재산의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적으로 간주하는 이 세상의 모습을 투영하는 듯하지요. 그들의 마음을 모르시지 않는 예수님은 그들의 요청대로 배에 오르십니다. 예나 지금이나 예수님을 자기 삶에서 떠나보내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아 보입니다. 그분은 존중하시는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마르 5,19)

큰 기적을 체험한 그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가고 싶어하지만 예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그의 거친 과거가 부담스러워서가 아니라, 그에게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방인들 사이에 남아 본인이 직접 겪은 은총을 나누고 증언하는 직무가 주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떠나시면서 당신 대신 그를 그곳에 남기신 것이지요. 이로써 오늘 복음 대목은 구마와 치유 기사일 뿐만 아니라 소명 기사로 확대됩니다.

제1독서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구약 시대를 살아간 선조들을 나열하면서 진정한 구원을 이야기합니다.

"이들은 모두 믿음으로 인정을 받기는 하였지만 약속된 것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내다보셨기 때문에, 우리 없이 그들만 완전하게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히브 11,39-40)

완전한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옵니다. 하느님과 함께 걸었던 구약의 거룩한 영혼들은 예수님께서 죽으신 뒤 저승에 오시어 자신들을 해방시켜 주시길 기다렸고, 그 구원은 이루어졌습니다.

하느님께서 태초부터 마련하신 당신의 구원 계획을 아드님을 통해 완성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계약의 수혜자로서 "더 좋은 것"을 누리며 영원한 생명을 향해 나아갑니다. 주님의 때를 맞이해 천상 혼인잔치에서 모두 함께 영원한 행복을 누릴 때까지 우리는 구원자 예수님께 의탁하고 그분께서 주신 소명을 지금 여기서 채워 나가야 합니다.

"이것"의 손실이 예수님의 부재보다 더 아픈 우상이 행여라도 나에게 있다면 진정으로 함께 기뻐하고 감사하며 찬양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혹 내 안에 예수님보다 더 잃기 싫은 무엇은 없는지 살피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내가 얻은 구원의 지위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이 구원에 초대된 벗님을 축복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