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1년 2월 3일 연중 제4주간 수요일

dariaofs 2021. 2. 3. 06:26

오늘 미사의 말씀은 앎과 거룩함과의 관계를 이야기하십니다.

"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마르 6,2)

예수님께서 나자렛에 가서 가르치시자 사람들이 놀랍니다. 보통 놀라움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움 앞에서 인간이 자연스럽게 느끼는 감정입니다.

놀라움은 사람을 하느님과 더 가깝게 하기도 하고 반대로 더 멀어지게 하기도 하지요. 매일 새롭게 주어지는 생명과 인연과 사건과 성장에 늘 감탄하며 하느님을 찬미할 수도 있고, 선입견이나 편견을 고수하기 위해 새로움을 비정상이나 오류 내지는 비논리로 치부해 무시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마르 6,3)

나자렛 사람들의 놀라움은 전자보다는 후자로 흘렀습니다. 이미 예수님의 출생부터 직업과 가족관계까지 훤히 꿰고 있으니 예수님의 지혜와 능력에서 드러나는 거룩함, 즉 하느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인정할 수 없었던 게지요.

제1독서에서는 앎과 거룩함이 어떤 관계인지 이야기합니다.

"거룩해지지 않고는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할 것입니다."(히브 12,14)

이중 부정으로 표현한 이 문장을 긍정문으로 뒤집어 보면, "거룩한 이는 모두 주님을 뵐 것입니다."가 되겠지요. '본다'(see)는 것은 '안다'(see)는 것입니다. 그러니 거룩한 이는 주님을 압니다. 세속의 얕은 지식으로써가 아니라 사랑으로써 압니다.

주님 백성의 거룩함은 그분과의 관계에 기인합니다. 제도 안에서나 영 안에서 주님께 속한 이, 세상 일에 파묻혀 눈앞의 이익만 보고 달리지 않고 주님의 일을 우선하는 이,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분 뜻을 염두에 두고 살아가는 이, 사랑이신 주님을 따라 사랑에 투신하는 이, 삶의 이유와 목적이 주님인 이...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 균형을 잡고 살아간다는 것은 세속의 원리와 거룩함이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며 서로를 범람시켜 뒤덮지 않고, 한쪽을 질식시키지도 않는 조화의 상태입니다. 분열이나 위선이 아닌 식별과 질서의 상태지요. 그런데 사실 말처럼 쉽지는 않은 듯하지요.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마르 6,6)

오늘 나자렛 사람들이 걸려넘어진 지점이 바로 이곳이지요.*** 자기들이 인간적으로, 세속적으로 안다고 여기는 정보들이 오히려 그들을 은총에서 떼어놓고 말았으니까요. 그들의 선입견과 편견, 거부와 배척에 놀란 예수님께서 그들을 위해 기적을 베푸실 수 없었으니까요. 예수님께서 서운하고 괘씸해서 도와주지 않으신 게 아니라, 믿지 않는 그들이 바라지도 청하지도 않으니 어쩔 수 없으셨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여러분은 아무도 하느님의 은총을 놓쳐 버리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히브 12,15)

히브리서 저자의 이 당부는 이천 년 전 나자렛 사람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를 향하고 있습니다. 기껏 은총으로 부르심을 받아 주님과 특별한 관계로 초대를 받고서도, 제도나 신분에 안주해서, 욕망에 몰두하느라, 자아와 일과 재물이라는 우상에 깊이 얽매여서, 회개를 촉구하는 새로움이 낯설고 귀찮고 두려워서 내내 주님과 거리를 두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믿고 주님과 친밀한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거룩한 이들은 시련과 고통조차도 훈육으로 여겨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 또한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이고 그분을 닮을 수 있는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우리가 보고 안다고 하는 모든 것이 주님께 나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지혜인지, 주님을 피하게 만드는 편견인지 잘 식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을 알기에 거룩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주님께 대한 진정한 앎이 우리 삶을 사랑으로 활짝 꽃 피워줄 것입니다. 보고 듣고 알고 믿고 사랑하게 되는 일련의 과정은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어 줍니다.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