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새해를 시작하는 우리에게 행복하게 한 해를 살아갈 지혜를 일러줍니다. 복음의 "깨어 있음", 제1독서의 "축복의 소명", 그리고 제2독서의 "하느님 중심성"입니다.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루카 12,40)
한 해를 시작하는 설에 우리 민족은 우리보다 먼저 이 세상을 살다 가신 조상들을 기립니다. 새로운 시간을 열면서 다가올 미래를 두근두근 기대하기에 앞서, 먼저 자신의 뿌리를 기억하고 또 언젠가 맞게될 죽음을 상기하는 것은 지혜롭고 의미 깊은 전통입니다.
"생각하지도 않은 때"
각자의 마지막 날과 세상의 마지막 날은 언제 닥칠지 아무도 모른다는 공통점을 지닙니다. 오직 시간의 주인이신 하느님만 아시는 그날 그 시간은, 그래서 세상 무서울 것 없이 교만하게 살아가는 이들까지도 자신의 한계를 자각하게 만들지요. 그렇기에 하느님 계획에 대한 무지는 오히려 인간에게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 깨어 있는 종들!"(루카 12,37)"
예수님께서 깨어 있다가 주인을 맞이하는 이들이 행복하리라고 선언하십니다. 이 "깨어 있음"은 물리적으로 잠에서 벗어난 상태라기보다, 영적인 각성 상태입니다. 깨어 있는 이들은 자신의 근원과 목적지를 인식합니다. 하느님의 숨이 아니면 흙의 먼지와 같이 보잘것없고 미소한 존재임을 아는 겸손에, 하느님 모상으로 창조된 존엄함이 적절히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이들이지요.
깨어 있는 이들은 자신이 하느님에게서 받은 은총을 기억합니다. 기억은 그 은총과 환희와 감사를 현재화해서 살아가게 하지요. 하느님과 누린 사랑의 순간을 기억하면서, 지금 여기서 그 사랑을 살아가는 것이 곧 깨어 있음입니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루카 12,37)
깨어 있는 영혼을 본 주인의 기쁨이 이렇게 표현되다니 놀랍지요! 종과 주인의 세속적 주종 관계를 생각하면 마치 종과 주인 사이의 신분이 바뀐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종으로 이 세상에 오셨지요. 강생은 하느님께서 인간의 낡고 병든 계급 관념을 깨뜨리고 내려오신 신비입니다. 주인이 깨어 기다리던 종에게 해 주는 섬김의 모습이야말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해 주고 싶어 늘 준비하고 계신 사랑입니다. 그분은 언제라도 그렇게 해 주고 싶어 노심초사 기다리십니다. 이 기다림은 그래서 그분과 우리, 쌍방입니다.
제1독서에서는 사제인 아론 집안에 내리시는 주님의 말씀으로,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복을 지향합니다.
"그들이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민수 6,27)
주님께서 사제들에게 축복의 사명을 맡기십니다. 그들이 백성을 향해, 주님께 복을 받고 그분 얼굴을 마주하며 은혜와 평화를 누리라고 빌어 줄 때, 주님께서 백성들에게 복을 내리신다고 하십니다.
서로를 축복해 주는 이 아름다운 소명은 직무사제직에 불리운 이들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보편 사제직으로 불리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도 주어졌습니다. 우리 누구나 축복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축복은 타인을 위한 기도일 뿐만 아니라 축복을 빌어 주는 이들에게도 엄청난 유익을 가져다 줍니다. 축복하는 마음이 곧 하느님의 마음이니까요.
제2독서에서는 우리 삶이 무엇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 들려 줍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 하고 말해야 합니다."(야고 4,15)
치열한 물질주의적 경쟁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계획은 중요합니다. 그래서 가족의 미래와 직업, 재산과 관련해 늘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며 동동거리지요. 하지만 재산이나 건강, 커리어 등 기껏 쌓은 공든 탑이 계획과는 상관없이 일순간 무너져 버린 허무한 경험을 자신에게든 타인에게서든 목도한 적이 없지 않을 겁니다. 그 중심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주님께서 원하시면"
이것이 하느님의 섭리 안을 살아가는 우리가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지혜입니다. 이 세상에는 하느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일은 일어나지 않으니까요. 제 능력이나 우연이라고 착각하는 이유는 모든 것 뒤로 당신을 숨기시는 하느님의 겸손을 몰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얕은 꾀와 조급한 계획, 엉성한 실행력에도 불구하고 일을 이루시는 주님을 외면한 채, 제 능력인양 오만하고 교만하게 하느님과 세상을 낮추어 보기 일쑤지요.
"주님께서 원하시면"
야고보 서간의 저자는 이제부터 우리의 계획이나 지향 앞에 늘 이 말씀을 새겨넣으라고 권고합니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살라는 뜻이 아니지요. 모든 일이 그분께 달렸다는 듯이 겸손하게 의탁하고, 모든 일이 나에게 달렸다는 듯이 열심을 다해야 합니다.
대림시기 첫 날, 1월 1일, 그리고 오늘까지 우리에게 벌써 새로움의 은총이 세 차례나 주어졌습니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늘 사랑을 향해 깨어 준비하며, 주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축복의 사람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그런 여러분이 있어 올해의 세상은 좀 더 나아질 것이고, 주님도 뿌듯하고 기쁘실 겁니다.
아론의 측복으로 벗님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새해 주님 복 많이 많이 받으십시오.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강 론 말 씀 '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21년 2월 14일 연중 제6주일 (0) | 2021.02.14 |
|---|---|
| 2021년 2월 13일 연중 제5주간 토요일 (0) | 2021.02.13 |
| 2021년 2월 11일 연중 제5주간 목요일 (0) | 2021.02.11 |
| 2021년 2월 10일 성녀 스콜라스티카 기념일 (0) | 2021.02.10 |
| 2021년 2월 9일 연중 제5주간 화요일 (0) | 2021.0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