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영적 여정에서 유혹이 다가올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보여 주십니다.
"카인은 땅의 소출을 주님께 제물로 바치고, 아벨은 양 떼 가운데 맏배들과 그 굳기름을 바쳤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아벨과 그의 제물은 기꺼이 굽어보셨으나, 카인과 그의 제물은 굽어보지 않으셨다."(창세 4,3-5)
편애처럼 느껴지는 주님의 반응에 대해서 성경 저자는 "땅의 소출"과 "맏배들과 그 굳기름"이라는 말을 통해 함축적으로 설명합니다. 아벨의 제물인 "양 떼 가운데의 맏배와 굳기름"은 가장 소중한 제물을 가리키지요. 모든 맏배는 주님의 것이고, 특히 짐승의 굳기름은 '피와 비슷하게 일종의 생명의 자리로 여겨질'만큼 중요했다고 하지요.
이에 비해 카인의 제물에 대해서는 "맏물"이나 상태를 가늠하는 표현 없이 그저 "땅의 소출"이라고만 적었습니다. 성경을 읽는 이들은 두 제물의 차이를 통해 봉헌의 마음가짐을 미루어 짐작할 뿐이지요.
"네가 옳게 행동하지 않으면, 죄악이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 너를 노리게 될 터인데, 너는 그 죄악을 잘 다스려야 하지 않겠느냐?"(창세 4,7)
카인이 아벨을 질투하자 주님께서 카인에게 이르십니다. "옳게 행동"하지 않은 구체적인 사례에 대해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이미 하느님 눈앞에는 드러났을 터이지요. 화답송에서 시편저자는 "너의 번제야 언제나 내 앞에 있다."라고 주님의 마음을 노래합니다. 만물의 주인이신 분께서 무엇이 필요해서 제사를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제물을 바치는 이와의 충실하고 친밀한 사랑의 관계성을 기대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유혹은 우리의 빈틈을 노립니다. 우리의 옳지 못한 탐욕과 욕망의 실마리를 붙잡고 영혼의 문턱까지 들어선 죄악이 그 앞에서 덮칠 틈을 노리며 도사리고 있습니다. 기회를 노리는 유혹에 문을 열어줌으로써 죄악으로 기우느냐, 마음을 바로 세워 오히려 그 죄악을 다스리느냐는 영적 여정에서 자주 마주치게 되는 갈림길입니다.
오늘 복음은 당신을 시험하려는 바리사이들에게 단호히 대처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분을 시험하려고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며"(마르 8,11-12)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서 베푸신 가르침이나 치유, 구마 기적으로는 그분의 신원을 인정할 수 없었던 걸까요? 그래서 자신들이 납득할 때까지 새로운 표징을 요구한 걸까요? 하지만 어떤 표징도 그들을 만족시킬 수 없을 겁니다. 제도권 밖에 머무르며 율법의 문자보다 정신을 중요시하는 예수님은 기존 종교 기득권자들에게 오히려 위협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미 답을 가지고 출발한 이 논쟁은 진리에 대항할 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넘어가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 몇 가지 그럴듯한 기적들을 보여주시면 당신 신원에 대한 그들의 동조를 끌어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러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는 당장의 우쭐한 명예와 인정받음, 소속의 안정감이 중요하지 않으시지요. 바리사이들의 불신 앞에서 솟아나는 그분 마음의 깊은 탄식은, 겉은 멀쩡하나 속은 단단히 병든 가련한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나옵니다.
"그들을 버려두신 채 다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셨다."(마르 8,13)
되찾은 양의 비유에서처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목자의 사랑에 익숙한 우리에게 오늘 예수님의 모습은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이 서슬 퍼런 단호함! 이 결단!
예수님은 그렇게 악을 내버려두고 떠나십니다. 지금은 그들의 구원을 위한 때가 아님을 아시니까요. 유혹이 우리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 미끼를 던질 때, 호기심에 몇 마디 주고받으며 기회를 주다가 말려들어가기 일쑤인 우리에게 예수님의 이 단호한 결단은 많은 가르침을 줍니다.
이야말로 주님이 카인에게 말씀하신 "죄악을 다스리는" 방법일 겁니다. 온전히 죄악과 분리되어 살아갈 수 없는 부족하고 나약한 죄인인 우리에게도 그 죄악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이 있다는 뜻입니다. 죄악에게 기회를 주지 말고 얼른 그곳을 떠나 주님께 몸을 던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은총의 사순 시기를 기다리며, 주님의 단호함에서 배우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모든 걸 아시는 주님 앞에서는 '대충 좋은 게 좋은 거'가 아니라, '아닌 건 아닌 것"입니다. 자기애와 분별 없고 무질서한 애착을 단호히 박차고 떠나, 마음을 보시는 주님께 진정한 사랑을 바치는 단계로 넘어가는 영적 여정을 걷고 있는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새해 축제의 여운을 뒤로하고 이제 지척에 다가온 사순 시기를 하루하루 잘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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