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1년 2월 17일 재의 수요일

dariaofs 2021. 2. 17. 05:56

사순 시기를 시작하는 오늘, 미사의 말씀은 주님께로 더 가까이 오라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마태 6,6.18)

자선과 기도와 단식은 하느님과 우리 관계를 돈독하게 해 주는 도구들입니다. 기도는 하느님과 나누는 사랑이고, 자선은 기도의 열매를 이웃과 나누는 사랑입니다. 단식은 우리가 무례하게 탐닉하고 착취해온 피조물과의 관계를 잠시 멈춤으로써 모든 피조물에 대한 존중을 회복하는 사랑입니다.

기도와 자선과 단식은 인간의 기본 욕구와 욕망을 제어하는 수고와 희생, 인내가 따릅니다. 그래서 사랑과 절제와 거룩함의 척도가 되기도 하지요. 하지만 타인에게 그러저러한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서 하는 코스프레가 아니라 숨어 계신 아버지와 우리 자신 사이의 내밀한 사랑일 때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와 자선과 단식에 있어서 율법이 정한 격식을 공개적으로 행하면서 자신들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기존 종교 권력자들의 위선을 지적하십니다. 하느님은 죽은 문자의 엄수보다 우리의 진정한 마음을, 사랑을 원하시니까요.

제1독서에서는 요엘 예언자의 입을 통해 주님의 바람이 선포됩니다.

"이제라도, 너희는 단식하고 울고 슬퍼하면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요엘 2,12)

주님은 사실 백성이 바치는 갖가지 재물에는 관심이 없으십니다. 세상 모든 것이 원래 당신의 것이니 무엇도 모자라고 갈급하실 리 없으시지요. 그분은 당신이 주신 것 중에서 무언가를 다시 되바치는 인간의 마음을 보시고, 또 기다리십니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우리를 기다리시는 그분께 마주 나가야 하는 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강조합니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2코린 6,2)

주님은 교회의 전례주년을 통해 우리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인이 되고 또 좋은 지향을 품고 살면서 이웃의 어려움까지 헤아려 주지만, 번번이 죄에 걸려 넘어지는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는 겁니다.

"지금"은 우리 마음과 영혼을 다시 새롭게 정화해 주님 앞에 거룩히 설 수 있게 해 주는 선물입니다. 그리고 오늘 또 다시 그 "지금"이 우리 앞에 펼져졌습니다. 죄인인 우리가 뭐라고 만물의 주인이신 분께서 우리 마음을 얻고자 그토록 간절히 기다리시는지 놀랍습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우리가 뭐라고 엇나가고 빗나가도 용서와 자비를 베푸시며 새롭게 해 주시는지 송구할 따름이지요.

작년에 이어 팬데믹 상황에서 두 번째로 맞는 올해의 사순 시기는 주님과 더 내밀한 관계로 들어가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숨어 계신 아버지 앞에 나아가 온 마음으로 사랑을 고백하고, 그 사랑을 조용히 이웃과 나누며, 형제인 피조물 앞에서 겸손히 자신을 비우는 은총의 시간이 우리에게 허락되었으니까요.

사랑하는 벗님! 매일 매 순간 다가오는 "지금"을 충실히 채워나가면서 고요히 신앙과 사랑의 내공을 쌓는 시간 되시길 축원합니다. 더 단단해지고 더 충만해진 영혼으로 십자가의 주님을 껴안는 그날까지 서로 격려하고 나아갑시다. 이 십자가의 길에 함께 동행하는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은혜로운 사순절 되십시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