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2월 20일 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오늘 미사의 말씀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회개한 이들과 아직 회개하지 않은 이들입니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레위는 모든 것을 버려둔 채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루카 5,28)
간결한 부르심에 단순한 응답이 이어집니다. 세관에서 일하는 세리라면 잇속 밝고 탐욕스러우며 민족의 반역자라 불리는 이들인데, 그런 레위가 한 랍비의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따른 건 놀라운 일입니다. 그래서 어떤 그림에는 그의 내적 어둠에 빛이 비추는 것으로 이 순간이 묘사되기도 했지요.
자기 이익을 위해 온갖 비리와 권모술수를 동원하고, 동포를 착취하며 율법은 신경도 쓰지 않는 그들이지만, 양심이 일으키는 물음이나 회의까지는 끊어내지 못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영혼에 각인된 하느님의 모상이 사람다움, 하느님 백성다움을 아주 잃게 내버려두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당신들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오?"(루카 5,30)
그런데 예수님이 그런 이들 가운데 하나를 제자로 부르시고 스스럼없이 그 무리와 어울리시는 상황이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에겐 몹시 불편합니다. 부정한 이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이도 부정하니 아예 상종을 안 하는 것이 답이라 여겼으니까요.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루카 5,32)
예수님은 율법이 죄인으로 분류한 이들에게 기회를 주시고 그들을 믿음으로 의롭게 하십니다. 율법이 아닌 믿음이 주는 의로움입니다. 레위를 비롯해 주님 식탁으로 모인 죄인과 세리들은 이제 회개하여 의롭게 된 하느님의 새 백성입니다.
반면 여전히 율법에 묶여 있는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여전히 매번 속죄 제물을 바쳐야 주님께 나아갈 수 있는 죄인들입니다. 제 아무리 완벽히 산다고 한들 수많은 율법의 금지 조항을 낱낱이 피하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그 율법의 죽은 문자로 타인을 판단하고 심판하는 자체가 죄인의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제1독서에서 그런 이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네가 네 가운데에서 멍에와, 삿대질과 나쁜 말을 치워 버린다면"(이사 58,9)
아무리 스스로를 의롭다고 여겨도, 율법으로 타인에게 멍에를 지우고 지적하며 악의에 찬 비방을 일삼는다면 주님 보시기에 회개가 필요한 상태입니다. 이야말로 율법의 정신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기 때문이지요.
"네 빛이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고, 암흑이 너에게는 대낮처럼 되리라."(이사 58,10)
오늘 부르심을 받아 빛 한가운데로 들어선 레위처럼, 아직 스스로 죄인인지도 모르면서 죄의 어둠 속에 갇힌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도 주님께로 돌아선다면 빛으로 나아올 수 있습니다.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셨다"는 예수님의 초대가 자신들을 향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면 말입니다.
제1독서에서 드러난 회개는 주님과의 관계와 사람 사이의 관계 모두를 가리킵니다. 주님 앞에 스스로 의롭다 여기는 이들, 곧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놓친 부분이 되겠지요.
"너는 주님 안에서 기쁨을 얻고, 나는 네가 세상 높은 곳 위를 달리게 하며"(이사 58,14)
'기쁨은 회개하는 이가 얻는 선물'입니다. 회개가 단죄와 심판의 칼날을 무디게 하고 서슬퍼런 비판과 오만한 무시를 잠재우니, 비로소 그의 눈에 모두가 형제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세상 모든 피조물이 형제인데(fratelli tutti)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이제 회개한 이는 제도 안의 지위나 세상 재물 때문에 높은 곳을 차지한 게 아니라, '부서지고 낮추어진 마음' 덕분에 주님 곁자리가 허락되어 높은 곳에 이릅니다. 회개는 가장 낮은 곳으로 오신 주님을 끌어안는 탁월한 길입니다.
원죄의 상처와 나약한 인간 실존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회개는 단 한 번의 결정적인 사건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성찰하고 회개하는 겸손이 필요하지요. 자신에게 빛이 필요함을 알고 청하는 겸손, 자신이 어둠임을 인정하는 겸손이 주님의 부르심을 알아듣습니다.
사랑하는 벗님! 레위와 함께 주님의 부르심에 흔쾌히 응답하고 따라나서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회개한 이의 기쁨이 여러분의 기쁨이 되길 축원합니다. 회개자인 벗님을 축복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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