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1년 3월 9일 사순 제3주간 화요일

dariaofs 2021. 3. 9. 06:11

오늘 미사의 말씀은 자비를 이야기하십니다.

"그 종의 주인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놓아주고 부채도 탕감해 주었다."(마태 18,27)

자비는 가엾은 마음에서 우러납니다. 주인이 탕감해 준 빚 만 탈렌트는 어마어마한 액수지요. 그 종과 가족이 평생 노예살이를 해도 갚기 어려운 금액이니 주인의 자비가 아니고서는 헤어나올 수 없습니다. 이제 모든 게 주인의 처분에 달려 있습니다.

주인의 가엾이 여기는 마음은 물질적 손해를 앞섭니다. 엎드려 빌며 사정하는 종에 대한 연민으로 더 이상 계산하거나 따지지 않고 그 무게를 덜어준 것이지요. 자비는 득실에는 눈을 감고 앙심은 털어버리고 그저 마음을 따라갑니다. 자비를 베푸는 이는 어느새 하느님 마음을 소유하게 되지요.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마태 18,33)

이처럼 한없이 통 크고 관대한 주인이지만, 그렇다고 종에게 바라는 것이 일절 없지는 않습니다. 종은 자신이 받은 자비에 힘입어 자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감사한다면 그래야 하니까요. 이것이 바로 주인이 암묵적으로 종에게 기대한 부분일 겁니다. 자비는 자비를 낳아야 합니다.

제1독서에서는 주님의 자비를 청하는 간절한 기도를 들려 줍니다.

"당신의 벗 아브라함, 당신의 종 이사악, 당신의 거룩한 사람 이스라엘을 보시어 저희에게서 당신의 자비를 거두지 마소서."(다니 3,35)

아자르야는 바빌론 유배 후 궁정에서 지내게 된 이스라엘의 젊은이들 중 하나입니다. 이 기도는 그와 동료들이 우상 숭배를 거부하다가 불가마에 던져졌을 때 바친 기도입니다.

죽음의 나락 한가운데에 떨어진 그는 겸손을 다해 자비를 간청합니다. 하느님 백성이 이방 민족에 몰락하게 된 이유를 자신들의 죄에서 찾으며, 주님께서 처음 계약을 맺어 주신 선조들,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을 기억해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들의 불행의 원인을 주님께 돌리지 않습니다. 주님께 함부로 구원을 강요하지도 않지요. 자신의 죄악과 부족함,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리시는 주님의 자비를 아는 이의 겸손한 기도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청할 것은 위기 모면이나 성공, 재물이나 안락한 삶이 아니라, 오직 그분의 자비임을 잘 보여주는 기도지요.

어쩌면 우리가 받은 주님의 자비는 반드시 갚아야 할 빚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비를 입는 순간 죄의 빚은 탕감될지 몰라도 타인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하는 숙제는 남은, 그런 빚 말입니다. 자비를 입은 이가 자비를 베풀 때 비로소 자비하신 하느님의 뜻이 이어집니다.

사랑하는 벗님! 우리의 용서와 자비를 간절히 필요로 하는 이가 혹 우리 주변에 없는지 살피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주님께로부터 여태 받아온 자비를 기억한다면, 그리고 그 자비 덕분에 이만큼 살아가는 자신의 처지를 인식한다면 자비의 사람이 될 준비는 충분합니다. 용기를 내어 자비를 실천하는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