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1년 3월 6일 사순 제2주간 토요일

dariaofs 2021. 3. 6. 01:36

오늘 미사의 말씀에서는 하느님의 허술함을 봅니다.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루카 15,2)

세리들, 죄인들을 환대하고 함께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못마땅해 투덜거립니다. "또"라는 표현에는 예수님을 향해 누적된 분노가 담겨 있지요. 그들은 한두 번으로 끝나는 실수가 아니라 고의성이 다분해 보이는 예수님의 범법(?)에 적의를 보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다."(루카 15,11)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려 주십니다. 어떤 아버지와 두 아들의 이야깁니다. 책임과 의무를 잘 지키며 모범적으로 살아온 큰 아들과 방탕하고 즉흥적인 둘째 아들이 대조를 이루지요.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루카 15,20)

하느님 아버지를 가리키는 비유 속 아버지는 나약해 보입니다. 사랑 때문에 나약하신 하느님이십니다. 멀쩡히 살아 있는 아버지에게서 유산을 앞당겨 받고는 흥청망청 써버린 둘째 아들에게 화 한 번 낼 줄 모르고, 동생을 환대한다고 날을 세우는 큰 아들에게도 성낼 줄 모르시는 바보지요. 둘째 아들의 몰락한 처지에 연민을, 큰 아들의 완고한 마음에도 연민을 갖는 분이십니다.

모처럼 자신들을 포용하는 분을 만나 예수님 곁으로 모여드는 세리들과 죄인들에서 둘째 아들이 보인다면,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영락없는 큰 아들 모습입니다. 그들에 대한 아버지(하느님)와 예수님의 대응은 어떨 모습일까요?

"먹고 즐기자."(루카 15,23)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루카 15,32)

아버지에게서 나온 이 말들에서 참 헤픈 하느님의 모습이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먹보요 술꾼"인 예수님의 모습도 비치지요

단지 우리가 워낙 비유를 자주 접해서 의식을 못할 뿐, 당시 상황으로 보면 아버지의 이 반응은 그야말로 어이없는 반전일 겁니다. 둘째 아들의 괘씸한 행태로 보아 예상할 수 없었던 대응이니까요. 혹 둘째 아들의 놀기 좋아하고 분별 없는 한량 기질이 아버지의 이 부분을 극대화한 유전자에서 유래하지 않았나 살짝 분심이 들기도 하네요.

제1독서에서는 그런 하느님의 모습을 뒷받침하는 예언자의 목소리를 들려 줍니다.

"그분께서는 다시 우리를 가엾이 여기시고, 우리의 허물들을 모르는 체해 주시리라."(미카 7,19)

하느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계명을 준수하며 바르게 사는 이들만이 아니라 율법의 경계 밖에서 허덕이며 자포자기하는 이들에게까지 다시 당신 품으로 돌아올 기회를 주고 싶어하시는 분이시지요.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자기중심적으로 오만히 살아온 이들이 한계를 맞닥뜨릴 때 잠시 멈추고 돌아서는 기색이라도 얼핏 보일라치면 먼저 달려나가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는" 절도 없고 헤픈 분이십니다. 그분은 작은 아들 같은 이들에게뿐만 아니라 큰 아들 같은 이들에게도 언제나 오매불망 열려 있는 바보 같이 허술한 분이십니다.

사순 제3주일을 준비하며, 아버지께서 초대하시는 기쁨에 마음을 여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아버지께서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고 축제를 명령하시니, 용서받는 기쁨, 용서하는 기쁨, 용서로 하나된 이들을 환대하는 기쁨 안에서 먹고 즐기며, 오늘은 아버지와 함께 마음껏 기뻐하셔도 좋을 듯합니다.
저도 오늘 특별히 멀리서 기쁨 가득한 마음으로 벗님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기쁜 날 되소서.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