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1년 3월 3일 사순 제2주간 수요일

dariaofs 2021. 3. 3. 05:35

오늘 미사의 말씀에서는 예수님의 모습과 구약의 예언자 예레미야의 모습이 겹쳐집니다.

"제가 당신 앞에 서서, 그들을 위해 복을 빌어 주고, 당신의 분노를 그들에게서 돌리려 했던 일을 기억하소서."(예레 18,20)

예레미야는 예수님께서 겪으실 수난을 미리 보여 준 참 예언자의 전형입니다. 백성을 위해 성심껏 주님의 말씀을 전하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건 조롱과 배척, 죽음의 위협뿐이었지요.

자신을 적대하는 이들을 위해 복을 빌어 주고, 주님께 분노를 거두시길 청한 대가로 예레미야에게 돌아온 건 혹독한 배반과 무시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희생제물이 되시면서까지 인류를 위해 이루시고자 하신 축복과 속량의 대가와 다르지 않지요.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그를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넘겨 조롱하고 채찍질하고 나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다."(마태 20,18-19)

스승의 운명은 이처럼 제자들이 기대한 바와 정반대의 기류로 흐릅니다. 그런데 그들은 스승 덕에 출세와 권력을 거머쥘 환상에 사로잡혀, 누가 가장 높은 자리를 선점하느냐의 문제로 어머니까지 동원하고, 공동체 안에 분란을 야기하니 아직 갈 길이 꽤 멀어 보이지요.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태 20,28)

오늘의 복음 대목이 세 번째 수난 예고인데도, 제자들은 스승의 소명에 대해 전혀 알아듣지 못합니다. 인간적 야망과 기대가 내면을 가득 채워서일까요... 절벽 같은 제자들에게 반복해서 당신의 소명을 들려 주시는 예수님의 인내가 놀라울 뿐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진심과 정성을 이해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할 뿐더러, 수고와 희생이 폄훼되고 왜곡되어 비수로 돌아올 수 있음도 감수해야 합니다. 스승이 더 험한 대접을 받았는데 제자야 더 말할 나위가 없을 테니까요.

주님의 길, 제자의 길은 세상이 주는 찬사나 영광의 길과 방향을 사뭇 달리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축복과 중재의 소명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그건 그야말로, 상대의 반응과는 상관없이 우리에게 주어진 고유한 소명이기 때문입니다.

예러미야 에언자도 사람들의 공격에 지쳐 주님 말씀 전하기를 멈추려 하다가, 뼛속에 가두어 둔 주님 말씀이 타올라 결국 견디지 못하고 다시 그분의 목소리가 되었다고 고백하지요.(예레 20,9 참조) 겟세마니에서 피땀을 흘리시며 고뇌하던 예수님도 결국 당신의 잔을 마시셨듯이, 소명이란 그런 겁니다.

사랑하는 벗님! 우리를 섬기러 오셔서 당신 목숨으로 우리 죄의 값을 치르시고 희생 제물이 되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우리 각자에게 부여하신 소명을 되새기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세상의 달콤한 인정과 찬사와 성공보다, 조롱과 모욕과 업신여김을 받으신 바보 사랑꾼 예수님께 더 매력을 느낀다면 잘 따라가고 계신 겁니다. 주님의 길, 사랑의 길, 바보의 길에 동행하는 벗님을 축복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