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에서는 아버지의 사랑이 절절히 묻어 있습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르 9,7)
예수님께서 거룩히 변모하신 순간에 하늘에서 들려온 하느님의 음성입니다. 예수님은 일찌기 세례 때에도 비슷한 말씀을 들으셨지요. 제자들 가운데서 "따로" 불리어 "높은 산"에서 이 영광의 순간을 목도한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은 이 목소리를 생생히 듣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아들"
이 말씀은 오늘 복음 환호송, 복음, 영성체송에서 세 차례나 반복됩니다. 그만큼 사순 제2주일의 말씀이 전하고자 하는 정수이고 핵심이지요. 이 안에는 외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성부 하느님의 진심이 들어 있습니다. 성부와 성자는 한 분이시고 성령과 함께 사랑의 유대 안에 온전히 일치하십니다. 사랑이신 하느님께 아드님은 사랑 그 자체십니다.
제1독서에서는 아브라함과 이사악 이야기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희생제사를 예견합니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거라. 그곳, 내가 너에게 일러 주는 산에서 그를 나에게 번제물로 바쳐라."(창세 22,2)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사악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하는 외아들"임을 잘 아십니다. 그런데도 당신에 대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해 보시려고" 이처럼 고통스런 명령을 내리시지요.
성경은 아브라함의 심경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절제하며 자신에게 내린 하느님의 뜻을 묵묵히 이행하는 모습을 전합니다. 간결히 표현된 아브라함의 말과 행동에서 우리는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을 읽습니다. 이 고통에서 먼 훗날 외아드님을 세상에 내어 주실 하느님의 고통 또한 함께 감지하게 되지요.
아브라함의 순종은 곧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인간의 손에 당신 외아드님을 내어 맡기신 하느님의 순종을 보여 줍니다. 하느님은 이미 '사람은 어려서부터 악한 뜻을 품기 마련'(창세 8,21 참조)임을 아시니, 인간의 자유의지에 외아드님의 처분을 맡기시고 얼마나 마음 졸이셨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과 아드님의 관계를 통해 우리의 위상을 이야기합니다.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로마 8,32)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드님을 내어 주십니다.(요한 3,16 참조) 사람들이 그분을 어떻게 대할지 모든 가능성을 모르지 않으시면서도 아드님의 순종과 사람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십니다. 이유는 우리에 대한 사랑입니다.
이처럼 하느님은 철저히 우리 편이십니다. 나약한 죄인인 우리가 때로 악하기까지 하다는 걸 아시면서도,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존재의 죽음과 당신이 받을 상처까지 수용하실 정도로 우리 구원에 매진하십니다. 하느님 모상인 우리의 존엄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제사로 완성됩니다.
오늘 세 제자가 마주한 예수님의 놀라운 모습은 험한 고난의 여정을 거친 후에 마주할 영광입니다. 거기에 가 닿기까지 얼마나 아프고 슬픈 배반과 회피와 버림받음의 사연이 남아있는지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아무리 험난하고, 그 길에서 드러날 우리의 민낯이 아무리 형편 없어도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시니까요. 우리가 곧 아버지의 "사랑하는 아들/딸"이니까요.
사랑하는 벗님! 이처럼 우리에게 희망을 품어도 좋다고 격려하시는 사순 제2주일의 말씀을 지팡이 삼아 길게 남은 사순 시기의 순례 여정을 묵묵히 걸어가시길 기원합니다. 아버지 하느님의 고통, 아브라함의 고통 속에 배어 있는 엄청난 사랑에 깊이깊이 머물러 하느님의 사랑받는 존재로 활짝 피어나길 바랍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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