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아버지의 자녀다움을 이야기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마태 5,45)
하느님 아버지는 모든 이에게 공평하십니다. 아웅다웅 도토리 키재기를 하며 차별과 갑질을 일삼는 인간의 눈에는 낯설게 보일지 몰라도, 아버지께는 당시의 모든 피조물이 그저 사랑스럽고 귀할 뿐입니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
누구도 가리지 않고 품으시는 아버지는 그래서 완전하십니다. 그분 마음속에 모든 피조물은 저마다 자기 자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완전함은 아버지의 모상으로 창조된 우리에게도 요구됩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마태 5,44)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큰 도전이 되는 말씀을 던지십니다. 이는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라는 옛 말씀을 뛰어넘는 가르침입니다.
본능대로 사는 이들에게는 참 어려운 요구이지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넘어, 받은 몇 배로 앙갚음해야 직성이 풀리는 이라면 못 들은 체, 귀를 막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자아와 감정을 역행하는 권고이기 때문입니다.
제1독서에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계약을 맺으신 주님의 선언을 들려줍니다.
"주님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그분 소유의 백성이 되고"(신명 26,18)
"주 너희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분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시겠다는 것이다."(신명 26,19)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선택하시어 당신의 소유, 당신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십니다. 그런데 이 선택과 계약의 수혜자는 철저히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하느님께서 한 백성의 주인이 되셨다고 해서 그분께 이롭거나 득이 될 일은 없으니까요.
이스라엘은 이 계약을 유지하기 위해 "그분의 길을 따라 걷고 그분의 규정과 계명과 법규들을 지키며 그분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낱낱의 문자에 코를 박고 살라는 의미가 아니라 이런 실천이 한 영혼을 차츰 하느님으로 물들어 가게 해주기 때문이지요. 인간에게 주어진 모든 법규와 규정과 계명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으로 방향지워져 있으니까요.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박해자를 위해 기도하는 행위는 하느님의 소유인 거룩한 백성이 사는 방식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박해자들을 위해 용서의 기도를 바치셨지요. 교회 역사 안에는 인간 본성만으로 어려운 이 무모한 사랑에 수많은 증거자가 몸을 던져 길을 내주었습니다.
살면서 밉고 서운한 사람이 하나도 없고, 박해와 공격의 대상이 된 적이 없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습니다. 마냥 피할 수도 덮어만 둘 수도 없는 아픈 인연들이 인생길 갈피 곳곳에 남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벗님! 오늘 예수님께서, 잘해 주는 이에게만 잘하지 말고, 또 좋아하는 이만 축복하지 말고 한번 담을 성큼 뛰어 넘어보라고 초대하십니다. 우리 미움과 분노 안에 갇혀 있던 이를 풀어 주어 가게 하라고, 그러다 보면 결국 우리 자신이 자유와 해방을 얻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극단적으로 원수나 박해자까지는 아니어도, 내가 사랑하기 어렵고 축복해 주기 망설여지는 이들을 마음에 품고 주님 앞에 머무르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사순 제2주일을 준비하며, 완전하신 아버지를 닮아가는 자녀로서 자아와 감정의 경계를 넘는 역설적 사랑에 몸을 던져보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이처럼 쉽지 않고 만만치 않은 사랑의 길을 주님만 믿고 따라가는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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